
모닝 오너 여러분에게 질문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돈을 한푼도 쓰지 않고 1년을 살 수 있을까요?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1년을 보내실 건가요? 다소 허무맹랑하게 느껴지는 이 질문에 삶으로 답한 분이 있습니다. <0원으로 사는 삶>의 저자 박정미 작가님인데요. 일곱 번째 Achim 북클럽은 <0원으로 사는 삶>과 함께했습니다.12월 2일부터 19일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책을 읽고 ACC를 통해 그 영감을 나누었죠.



모닝 오너들이 ACC #achim-reading 채널에 나누어 준 후기들
그리고 2024년을 열흘 정도 앞둔 금요일 저녁, 일곱 번째 Achim 북클럽 <0원으로 사는 삶>의 오프라인 밋업이 프로비전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이날 북클럽 모임은 유독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저자인 박정미 작가님께서 함께해 주셨기 때문이죠.
이 책은 2014년, 런던에 거주하던 작가님이 살인적인 물가에 더 이상 생계를 이어 나갈 수 없어 시작한 ‘0원 살이’의 과정을 담은 책이에요. 돈을 벌지도, 쓰지도 않으면서 이어지는 삶의 여정은 런던을 넘어 영국 전역으로, 영국을 넘어 전 세계로 점차 경계를 허물며 확장됐죠. 어떻게 그 여정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요? 10년이 지나 작가님은 6명의 모닝 오너에게 진솔하고도 명쾌하게 들려주셨습니다. 0원 살이 안에서 경험한 수많은 일들과 다양한 사람들, 그 여정을 통해 얻은 삶의 방식과 지혜와 기술을요. 그 일부를 여러분과 나눕니다.


“이 책은 (0원 살이라는) 그 과정 속에서 겪은 걸 바로 쓰지 않고,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성장한 과정에서 쓴 거예요. 그러다 보니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죠. 텃밭도 가꾸고, 돌담도 쌓고, 바다 수영도 하고, 한량처럼 살다 보니까요. (웃음) 그런데 여행할 때 책을 쓰려고 했다면 못 썼을 것 같아요. 저에게 너무 많은 충격과 변화가 있어서 정리가 안 됐거든요. 여행하면서 쓴 글을 책으로 내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저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어요. 제가 어디로 갈지 그 방향을 모르는데 어떻게 글을 쓸까 싶더라고요. 진도에 정착하고 2년 정도 지나서야 책상 앞에 앉고 싶어져서 그제서야 조금씩 조금씩 쓰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글을 쓰면서 소화가 됐어요. 쓰면서 정리가 되고, 쓰면서 제 것으로 만들어지고. 생각해 보면 한국 생활이 없었으면 완성 못 했을 책이에요. 여기(한국)가 제 현실이잖아요. 여기(여행)에선 꿈같이 산 거예요. 그런데 이제 다시 현실로 돌아온 거죠.”
“제가 숲에 와서 혼자 살면서 깨달았어요. 내가 혼자 살기에는 부족한 기술이 이렇게나 많구나. 도시에선 돈으로 그 불완전함을 채우잖아요. 그런데 돈 없이 그 불완전함을 채우려면 내가 완전한 자립을 이루거나 누군가와 도움을 주고받으며 함께 살거나 둘 중 하나인데, 사람이 혼자서 완벽할 수가 없거든요. 어느 정도까진 가능할 순 있어도, 힘들겠죠. 결국은 함께 사는 게 답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저는 함께 살기 힘든 사람과 같이 사는 법을 배우는 게 곧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나 살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보기 싫은 사람 안 보고 살면 좋겠지만, 어딜 가도 있잖아요. 없는 곳 없잖아요. 그 말은, 받아들여야 한다는 거죠. 결국은 나와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우리가 찾아야 하고, 그것의 핵심은 정말 사랑과 연민뿐이다, 사랑과 연민을 계속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미소랑 웃음, 그게 가장 중요한 생존 기술 같아요. 환한 얼굴로 상대를 대하면 약간 ‘무장 해제’ 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거든요. 히치하이킹을 하려면 웃을 수 밖에 없어요. 너무 힘들어도 웃어요. 그러면 태워 주더라고요. 한국으로 넘어와 진도에서 저랑 가치관이 많이 다른 분들과 지내면서도 되게 행복하게 살 수 있었던 이유를 생각해 보면, 주변 선생님들이 다 도와주셨거든요. (중략) 저 혼자서는 완벽한 자급자족을 이룰 수 없고, 결국 다른 사람들과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살아야 하는데, 환한 얼굴, 환한 인상, 그거 하나면 정말 다 얻어 먹고 시골에서도 안 굶어 죽고 살 수 있더라고요.”


“요즘은 좀 건강이 삐걱거리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이 생각을 하게 됐어요. ‘내가 지금까지 돈이 없어서 몸으로 때우면서 살았구나.’ 0원 살이도 그렇고, 건강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많았던 거예요. 그런데 만약 제가 몸이 망가지면, 돈이 없는데 건강까지 없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결국은 돌봄 사회로 가야 하는 거죠. 그런데 그건 사회 공공 시스템이 아니라, 서로 사랑과 연민과 존경을 바탕으로 한 지역 사회여야 한다고 많이 느껴요. 내가 다치면 누군가 당연히 달려와 주고, 누군가 다치면 내가 당연히 달려가 주고. 이런 세상이 돼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저의 요즘 관심사는 ‘노’, ‘병사’예요. 저는 지금까지 삶을 위해 살았고, 이제는 죽음을 향해 간다고 제 방향성을 정해 뒀거든요. 그게 무의미로 향한다는 게 아니라, 저는 진짜 잘 죽고 싶어요. 정말 잘 늙고, 병들어도 고통받지 않게 죽어 가고 싶어요. 그런데 지금 사회 시스템에선 죽어가는 과정도 결국은 다 돈이거든요. 병원에 의지하고, 요양원에 가고, 보험에 기대고. 그럼 돈이 없는 채로는 어떻게 죽을 것인지 대안을 찾아야 하는 거죠. 원시 부족 사회에선 연로한 사람들은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지혜의 스승이었어요. 육체적인 기능과 능력은 상실했지만 젊은 세대가 못 가진 지혜가 있기 때문에 그들의 영적 성장을 도왔죠. 그 공동체에선 버려지는 사람이 없었어요. 누구나 다 재능이 있었고, 그게 서로의 돌봄으로 이어졌죠. 저는 그게 이상적인 삶의 방향이라고 생각해요. 갑자기 부족 사회라니 너무 극단적으로 들리겠지만, 저는 그게 불가능하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부족 사회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런 식의 공동체가 지역 사회에서 소소하게 많아지고 있어요. 따로 또 같이 살면서 함께 농사 짓고, 집 짓고, 같이 공부하고, 상품 만들고 그러는 모임들 되게 많아요. 그런 식의 절충안을, 중간의 답을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늘 질문이 많고, 반항심 많고, 불만 많고 극단적인 아이였어요. 제 첫 직장이 군대였거든요. 약한 게 싫고 강해지고 싶어서 군인이 됐는데, 막상 군에 가니까 숨이 막히고 반항하고 싶은 거예요. 나와서 직장 생활을 시작하니 ‘내가 이렇게 살려고 태어났나?’ 고민이 들어 그만두고 영국으로 가고, 영국에서 돈이 없어지니 갑자기 돈을 안 벌기 시작하고. 그러니까 뭔가 제 삶은 늘 도망치는 삶처럼 느껴졌거든요. 타협 잘 못하고, 적응 잘 못하고, 싸우고. ‘나는 왜 이럴까. 나는 왜 이렇게 불만이 많을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이제는 이해가 되죠. 그냥 이 길을 찾으려고 했던 거예요. 결국에는 성공도 아니고, 권력도 아니고, 그냥 되게 소박한, 어떻게 보면 누추할 수 있는 삶이 됐잖아요. 결국 이 삶이 되려고 그런 것들을 한 것 같아요. 이렇게도 살아 보고, 저렇게도 살아 보고. 명예욕도 강했다가, 돈도 많이 벌어 보고 싶다가, 소비도 되게 좋아했다가. 그렇게 별의별 걸 다 해 보다가 결국 그 끝에 제게 가장 안정적인 삶의 방식, 방향성을 찾은 거죠. ‘이걸 찾으려고 그렇게 난리를 쳤구나.’ 생각해요. 그런데 중요한 건,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이나 삶의 형태를 떠나, 마음 상태죠. 뭔가가 안 채워져서 이런저런 욕구들을 막 쫓아가는 삶을 살다가 이제는 욕구를 덜어내야 하는 삶으로 가는 게 제게 편안하니까 그 방향으로 계속 가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다시 과거로 돌아가도 군대에 갈 것 같아요. 거기서 배워야만 했던 게 있으니까요. 제게 일어난 일들은 모두 제가 반드시 했어야 하는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의 제가 있는 거니까, 후회되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제가 제일 존경하는 사람이, 도시에서 직장 다니면서 평정심 잃지 않고 평온하게, 사랑과 연민을 느끼면서, 자기 일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이에요. 저라는 사람의 속성은 불만족과 질문을 깨부수는 방식으로 살아와서 이쪽으로 왔지만, 사람마다 답은 다 다른 거죠. 저는 자연에 살고 있지만, 도시에서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으면 좋죠. 다만 저는 도시에서 만들어 놓은 파장이나 모습들이 사람을 고통받고 소외되고 불행하고 외롭고 불안하게 만들기 때문에, 마음의 평화를 찾아주는 곳이 제게는 자연이기 때문에 여기 있는 거거든요. 하지만 여기가 답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마음의 평정을 이룬 사람은 어디에 있든 평온하거든요.”
“힘들 때 우리 개들이랑 지리산 둘레길 산책하면, 그냥 눈물이 막 날 정도로 아름다워요. 자연은 저한테 제 하루를, 제 순간을 마냥 풍성하게 만들어 주고, 풍요롭게 만들어 주고, 아무것도 필요 없이 그냥 이 순간에 있게 해 주는 것 같아요. 저는 그게 생명력이라고 봐요. 그것만큼 우리를 순간에 몰입하게 할 수 있는 건 없다 생각하고요.”

대화가 한참 무르익던 중, 작가님이 창밖을 향해 외치셨어요. “눈이에요! 꼭 반디불이 같다.” 다 함께 고개를 돌려 반딧불처럼 반짝이며 느긋이 나리는 눈발을 바라보았어요. 잠시 시간이 멈춘 듯 고요가 찾아왔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아무것도 필요 없이 그 순간에 온전히 존재한 기분이었어요. 우리가 함께 느낀 생명력은, 그리고 그날의 대화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만 같습니다.
정미 작가님은 <0원으로 사는 삶>을 영상화한 다큐멘터리 영화 <담요를 입은 사람>으로 세계 각국의 영화제를 다니고 계시며, 한국 개봉을 위해 부단히 준비 중이시라고 해요. 우리는 약속했습니다. 극장에 <담요를 입은 사람>이 걸리면 그때 다시 모여 영화를 함께 보고 이야기 나누기로요. 잊지 않고 Achim 팀이 그 시간 꼭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조조 영화로 다 함께 0원 살이를 떠나 볼 아침,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Photograpghed & Edited by Doy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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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 오너 여러분에게 질문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돈을 한푼도 쓰지 않고 1년을 살 수 있을까요?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1년을 보내실 건가요? 다소 허무맹랑하게 느껴지는 이 질문에 삶으로 답한 분이 있습니다. <0원으로 사는 삶>의 저자 박정미 작가님인데요. 일곱 번째 Achim 북클럽은 <0원으로 사는 삶>과 함께했습니다.12월 2일부터 19일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책을 읽고 ACC를 통해 그 영감을 나누었죠.
모닝 오너들이 ACC #achim-reading 채널에 나누어 준 후기들
그리고 2024년을 열흘 정도 앞둔 금요일 저녁, 일곱 번째 Achim 북클럽 <0원으로 사는 삶>의 오프라인 밋업이 프로비전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이날 북클럽 모임은 유독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저자인 박정미 작가님께서 함께해 주셨기 때문이죠.
이 책은 2014년, 런던에 거주하던 작가님이 살인적인 물가에 더 이상 생계를 이어 나갈 수 없어 시작한 ‘0원 살이’의 과정을 담은 책이에요. 돈을 벌지도, 쓰지도 않으면서 이어지는 삶의 여정은 런던을 넘어 영국 전역으로, 영국을 넘어 전 세계로 점차 경계를 허물며 확장됐죠. 어떻게 그 여정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요? 10년이 지나 작가님은 6명의 모닝 오너에게 진솔하고도 명쾌하게 들려주셨습니다. 0원 살이 안에서 경험한 수많은 일들과 다양한 사람들, 그 여정을 통해 얻은 삶의 방식과 지혜와 기술을요. 그 일부를 여러분과 나눕니다.
“이 책은 (0원 살이라는) 그 과정 속에서 겪은 걸 바로 쓰지 않고,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성장한 과정에서 쓴 거예요. 그러다 보니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죠. 텃밭도 가꾸고, 돌담도 쌓고, 바다 수영도 하고, 한량처럼 살다 보니까요. (웃음) 그런데 여행할 때 책을 쓰려고 했다면 못 썼을 것 같아요. 저에게 너무 많은 충격과 변화가 있어서 정리가 안 됐거든요. 여행하면서 쓴 글을 책으로 내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저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어요. 제가 어디로 갈지 그 방향을 모르는데 어떻게 글을 쓸까 싶더라고요. 진도에 정착하고 2년 정도 지나서야 책상 앞에 앉고 싶어져서 그제서야 조금씩 조금씩 쓰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글을 쓰면서 소화가 됐어요. 쓰면서 정리가 되고, 쓰면서 제 것으로 만들어지고. 생각해 보면 한국 생활이 없었으면 완성 못 했을 책이에요. 여기(한국)가 제 현실이잖아요. 여기(여행)에선 꿈같이 산 거예요. 그런데 이제 다시 현실로 돌아온 거죠.”
“제가 숲에 와서 혼자 살면서 깨달았어요. 내가 혼자 살기에는 부족한 기술이 이렇게나 많구나. 도시에선 돈으로 그 불완전함을 채우잖아요. 그런데 돈 없이 그 불완전함을 채우려면 내가 완전한 자립을 이루거나 누군가와 도움을 주고받으며 함께 살거나 둘 중 하나인데, 사람이 혼자서 완벽할 수가 없거든요. 어느 정도까진 가능할 순 있어도, 힘들겠죠. 결국은 함께 사는 게 답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저는 함께 살기 힘든 사람과 같이 사는 법을 배우는 게 곧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나 살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보기 싫은 사람 안 보고 살면 좋겠지만, 어딜 가도 있잖아요. 없는 곳 없잖아요. 그 말은, 받아들여야 한다는 거죠. 결국은 나와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우리가 찾아야 하고, 그것의 핵심은 정말 사랑과 연민뿐이다, 사랑과 연민을 계속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미소랑 웃음, 그게 가장 중요한 생존 기술 같아요. 환한 얼굴로 상대를 대하면 약간 ‘무장 해제’ 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거든요. 히치하이킹을 하려면 웃을 수 밖에 없어요. 너무 힘들어도 웃어요. 그러면 태워 주더라고요. 한국으로 넘어와 진도에서 저랑 가치관이 많이 다른 분들과 지내면서도 되게 행복하게 살 수 있었던 이유를 생각해 보면, 주변 선생님들이 다 도와주셨거든요. (중략) 저 혼자서는 완벽한 자급자족을 이룰 수 없고, 결국 다른 사람들과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살아야 하는데, 환한 얼굴, 환한 인상, 그거 하나면 정말 다 얻어 먹고 시골에서도 안 굶어 죽고 살 수 있더라고요.”
“요즘은 좀 건강이 삐걱거리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이 생각을 하게 됐어요. ‘내가 지금까지 돈이 없어서 몸으로 때우면서 살았구나.’ 0원 살이도 그렇고, 건강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많았던 거예요. 그런데 만약 제가 몸이 망가지면, 돈이 없는데 건강까지 없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결국은 돌봄 사회로 가야 하는 거죠. 그런데 그건 사회 공공 시스템이 아니라, 서로 사랑과 연민과 존경을 바탕으로 한 지역 사회여야 한다고 많이 느껴요. 내가 다치면 누군가 당연히 달려와 주고, 누군가 다치면 내가 당연히 달려가 주고. 이런 세상이 돼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저의 요즘 관심사는 ‘노’, ‘병사’예요. 저는 지금까지 삶을 위해 살았고, 이제는 죽음을 향해 간다고 제 방향성을 정해 뒀거든요. 그게 무의미로 향한다는 게 아니라, 저는 진짜 잘 죽고 싶어요. 정말 잘 늙고, 병들어도 고통받지 않게 죽어 가고 싶어요. 그런데 지금 사회 시스템에선 죽어가는 과정도 결국은 다 돈이거든요. 병원에 의지하고, 요양원에 가고, 보험에 기대고. 그럼 돈이 없는 채로는 어떻게 죽을 것인지 대안을 찾아야 하는 거죠. 원시 부족 사회에선 연로한 사람들은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지혜의 스승이었어요. 육체적인 기능과 능력은 상실했지만 젊은 세대가 못 가진 지혜가 있기 때문에 그들의 영적 성장을 도왔죠. 그 공동체에선 버려지는 사람이 없었어요. 누구나 다 재능이 있었고, 그게 서로의 돌봄으로 이어졌죠. 저는 그게 이상적인 삶의 방향이라고 생각해요. 갑자기 부족 사회라니 너무 극단적으로 들리겠지만, 저는 그게 불가능하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부족 사회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런 식의 공동체가 지역 사회에서 소소하게 많아지고 있어요. 따로 또 같이 살면서 함께 농사 짓고, 집 짓고, 같이 공부하고, 상품 만들고 그러는 모임들 되게 많아요. 그런 식의 절충안을, 중간의 답을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늘 질문이 많고, 반항심 많고, 불만 많고 극단적인 아이였어요. 제 첫 직장이 군대였거든요. 약한 게 싫고 강해지고 싶어서 군인이 됐는데, 막상 군에 가니까 숨이 막히고 반항하고 싶은 거예요. 나와서 직장 생활을 시작하니 ‘내가 이렇게 살려고 태어났나?’ 고민이 들어 그만두고 영국으로 가고, 영국에서 돈이 없어지니 갑자기 돈을 안 벌기 시작하고. 그러니까 뭔가 제 삶은 늘 도망치는 삶처럼 느껴졌거든요. 타협 잘 못하고, 적응 잘 못하고, 싸우고. ‘나는 왜 이럴까. 나는 왜 이렇게 불만이 많을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이제는 이해가 되죠. 그냥 이 길을 찾으려고 했던 거예요. 결국에는 성공도 아니고, 권력도 아니고, 그냥 되게 소박한, 어떻게 보면 누추할 수 있는 삶이 됐잖아요. 결국 이 삶이 되려고 그런 것들을 한 것 같아요. 이렇게도 살아 보고, 저렇게도 살아 보고. 명예욕도 강했다가, 돈도 많이 벌어 보고 싶다가, 소비도 되게 좋아했다가. 그렇게 별의별 걸 다 해 보다가 결국 그 끝에 제게 가장 안정적인 삶의 방식, 방향성을 찾은 거죠. ‘이걸 찾으려고 그렇게 난리를 쳤구나.’ 생각해요. 그런데 중요한 건,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이나 삶의 형태를 떠나, 마음 상태죠. 뭔가가 안 채워져서 이런저런 욕구들을 막 쫓아가는 삶을 살다가 이제는 욕구를 덜어내야 하는 삶으로 가는 게 제게 편안하니까 그 방향으로 계속 가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다시 과거로 돌아가도 군대에 갈 것 같아요. 거기서 배워야만 했던 게 있으니까요. 제게 일어난 일들은 모두 제가 반드시 했어야 하는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의 제가 있는 거니까, 후회되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제가 제일 존경하는 사람이, 도시에서 직장 다니면서 평정심 잃지 않고 평온하게, 사랑과 연민을 느끼면서, 자기 일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이에요. 저라는 사람의 속성은 불만족과 질문을 깨부수는 방식으로 살아와서 이쪽으로 왔지만, 사람마다 답은 다 다른 거죠. 저는 자연에 살고 있지만, 도시에서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으면 좋죠. 다만 저는 도시에서 만들어 놓은 파장이나 모습들이 사람을 고통받고 소외되고 불행하고 외롭고 불안하게 만들기 때문에, 마음의 평화를 찾아주는 곳이 제게는 자연이기 때문에 여기 있는 거거든요. 하지만 여기가 답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마음의 평정을 이룬 사람은 어디에 있든 평온하거든요.”
“힘들 때 우리 개들이랑 지리산 둘레길 산책하면, 그냥 눈물이 막 날 정도로 아름다워요. 자연은 저한테 제 하루를, 제 순간을 마냥 풍성하게 만들어 주고, 풍요롭게 만들어 주고, 아무것도 필요 없이 그냥 이 순간에 있게 해 주는 것 같아요. 저는 그게 생명력이라고 봐요. 그것만큼 우리를 순간에 몰입하게 할 수 있는 건 없다 생각하고요.”
대화가 한참 무르익던 중, 작가님이 창밖을 향해 외치셨어요. “눈이에요! 꼭 반디불이 같다.” 다 함께 고개를 돌려 반딧불처럼 반짝이며 느긋이 나리는 눈발을 바라보았어요. 잠시 시간이 멈춘 듯 고요가 찾아왔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아무것도 필요 없이 그 순간에 온전히 존재한 기분이었어요. 우리가 함께 느낀 생명력은, 그리고 그날의 대화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만 같습니다.
정미 작가님은 <0원으로 사는 삶>을 영상화한 다큐멘터리 영화 <담요를 입은 사람>으로 세계 각국의 영화제를 다니고 계시며, 한국 개봉을 위해 부단히 준비 중이시라고 해요. 우리는 약속했습니다. 극장에 <담요를 입은 사람>이 걸리면 그때 다시 모여 영화를 함께 보고 이야기 나누기로요. 잊지 않고 Achim 팀이 그 시간 꼭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조조 영화로 다 함께 0원 살이를 떠나 볼 아침,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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