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ENDLY]Article #13. The History of Cheerfulness

2023-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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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티클은 ACC Morning Hurdling의 첫 번째 프로그램인 ‘Monocle Translation Hurdling’의 결과물입니다.
<The Monocle Companion> 속 일부 컨텐츠를 호스트 희석 님과 모닝 오너 다섯 분이 함께 번역했습니다.


Article #13: The History of Cheerfulness 쾌활함의 역사

더 행복한 미래를 위해 우리 모두가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아주 간단한 해결책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그건 바로 각자의 쾌활한 기질을 발휘할 수 있게 만드는 주변의 단순한 기쁨에 공감하며, 그런 감정을 이해하고 익히는 것입니다.


얼마 전부터, 제 삶이 어딘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마다, 자주 읽는 ‘몽테뉴의 에세이’ 속 문장을 곱씹어보고 있습니다. 몽테뉴는 좋은 삶에서는 ‘배움’과 ‘경험’ 모두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하죠. 그러면서 그는 지나가는 말로 "지혜가 남기는 가장 분명한 가치는 끊임없는 유쾌함이다. 이는 언제나 달 위에 있는 것처럼 고요하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그 문장이 너무나도 아름다우면서도 동시에 한 번에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기에, 하던 일을 잠시 멈추게 되었죠. 

  그러다 셰익스피어에게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의 마지막 연극이었던 ‘템페스트’에서는 폭군인 안토니오가 자신의 동생 프로스페로에게서 밀란의 왕위를 빼앗는 형제 사이의 배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동생 프로스페로는 결국 마법으로 형이 자신에게 복종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적에게 복수하는 대신 이렇게 말하죠. “모두 쾌활함을 잃지 말거라, 모든 게 잘 될 것이라고 여겨라.” 지금 우리의 상황과는 반대인, 명령에 강제로 따라야 하는 두려움과 혼란이 가득했던 당시의 문화 속에서 이러한 권유를 건넸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고, 또 한편으로는 무척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몽테뉴*(프랑스의 수필가, 철학자)가 이야기하는 쾌활함은 우리에게 달 너머 고요한 세계로 보내줍니다. 템페스트 속 동생 프로스페로가 이야기했던 대목에 각자의 해석을 더해 고민해 보세요. 이 르네상스의 현자는 우리에게 어떤 종교나 치료요법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는 단지 쾌활함을 지지해 왔을 뿐이죠. 이렇듯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들은 분명 저의 주의를 끌었고, 저는 쾌활함의 역사에 대해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영단어 "cheer"은 "얼굴"을 뜻하는 고전 프랑스 단어인 “chiere” 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다른 언어에선 각기 다른 단어를 사용하지만(프랑스어로는 ‘쾌활함을 “gaieté”’라고 하고 독일어로는 “heiterkeit”라 합니다), 쾌활함은 일반적으로 얼굴의 표정에서 시작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거기서부터 그것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움직임이 됩니다. 쾌활함은 얼굴의 표정을 활용하여 의도적으로 선한 감정과 태도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많은 감정과 달리, 쾌활함은 여러분이 통제할 수 있는 감정적이고 영적인 에너지입니다. 스스로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어렵지만 "힘 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니까요. 몽테뉴는 침입자에게 고문을 당하는 순간에도 문제없다는 표정을 짓는 브라질 원주민을 고귀하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명랑함은 고귀한 정신에 대한 표식이기 때문입니다.

  쾌활함의 역사에 대한 탐구는 다시금 저를 어린 시절로 이끌어 주었는데, 이는 쾌활함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게 해 주었습니다. 저는 사고로 인해 개인의 일상이 파괴되고, 심각한 신체적 부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과 가까운 곳에서 자랐습니다. 그들에겐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 자체가 도전이었죠. 밝은 미래를 향한 이상적인 생각과 희망은 빈 말처럼 공허했습니다. 그들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바로 현실이었어요. 이러한 상황에서의 ‘쾌활함’은 그 역사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하고, 동시에 사회적 미덕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가까운 미래를 그리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어떤 순간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되어줍니다. 정신의 고양과 자아를 명료하게 다듬는 것을 포함합니다. 또한 사람들과 사이좋게 어울릴 수 있는 관계에서의 능력을 제공할 수도 있죠. 우리는 쾌활함의 기술을 항상 활용할 수 있는 자아 실천의 부분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 자신을 넘어 타인과의 관계에도 적용되곤 합니다.

  철학자 랄프 왈도 에머슨이 ‘쾌활함’을 일종의 ‘힘’이라 표현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는 이것을, 자신의 글로 세상을 밝히는 ‘시인’과 연결 지어 이야기했어요. “진정한 음유 시인은 그들만의 단호하고 쾌활한 기질로 주목받아 왔다.” 셰익스피어에 대해 쓴 그의 에세이의 한 부분입니다. 재앙에 대해 쾌활함으로 반응하는 것은 일시적이고 겸손하지만 강력합니다. 이것은 에머슨의 제자인 프리드리히 니체가 만든 가장 위대한 현대의 공식이죠. 니체는 1880년, ‘쾌락의 지혜’와 ‘쾌락의 과학’이라는 개념을 고안해 냈습니다. *(1900년대 전까지만 해도 ‘gay’는 동성애라는 의미가 아닌 ‘쾌락’이라는 단어로 사용되었습니다) 낡은 질서가 소멸하는 것에 대한 답례로, 니체는 예술의 힘에서 쾌활함을 찾아냅니다. 예술은 미적이며 동시에 도덕적인 존재 방식으로서 우리를 제약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습니다. 이것이 현대적인 명랑함이고, 자아의 에너지이죠.

  저의 ‘쾌활함’의 역사를 곱씹어보면 그 감정의 시작은 오래전에 제가 친척 그리고 이웃들과의 행복한 순간에서 느꼈던, 에너지와 밝은 기운이 지닌 순간의 두근거림과 행복한 감정으로부터였고, 이제 이를 넘어 더욱 큰 의미로 넓게 확장되었습니다. 그건 정말 당연한 일 일 수밖에 없었죠. 
신학과 철학에 기반하여 우리의 행동과 관점을 통제하는 것은 한편으로 일종의 실천이지만, 동시에 죄악처럼 여기 지기도 합니다. 쾌활함이라는 감정은 우리가 현재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부터 주의를 환기시키고, 생각의 방향을 바꿀 수 있게 하죠. 그것은 오스틴이나 디킨스 그리고 셰익스피어를 읽지 않아도 예술을 위한 감성적 요인들과 우리 삶의 감정적 부분들, 종교와 같은 영적 공동체 사이에서의 감정 등 이 모든 것에서도 그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이것은 치료 기법 등에 의한 효과처럼 큰 변화나 확실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쾌활함의 미덕은 어떨 땐 명확히 알 수 없기도 하지만 분명한 건 이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이죠. 결국 몽테뉴나 니체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것은 그 자체로 지혜이며, 우리에게 순간의 분노를 잠재워 그 너머의 더 넓고 고요한 공간으로 향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이는 정말 황홀한 감정이 들게 할 거예요. 아마도.




작가 소개

아티클의 저자 햄튼(Timothy Hampton)은 캘리포니아의 버클리 대학에서 비교문학교과를 가르치고 있는 교수이며, <쾌활함: 그 자유와 문화적 역사에 대하여- Cheerfulness: A Literary and Cultural History(Zone Books,2022)> 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해당 아티클은 ‘모노클’의 자매지 ‘콘팩트(Konfekt)’에도 기고된 적 있던 글입니다.



Trasnlated by 모닝 오너 희석, 영진, 근영, 지수, 승하,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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