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ENDLY]After Writing on Canvas 허들링 #5

2024-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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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마지막 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미술 작품 감상 플랫폼 BGA에선 Achim 에디터들이 선정한 작품과 그에 대한 감상을 담은 에세이가 발행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Achim 커뮤니티 슬랙 ACC(Achim Community Center)에선 'Writing on Canvas' 허들링이 진행되었어요. 모닝 오너들이 밤 11시에 작품과 글을 감상한 뒤, 다음 날 아침 맑게 갠 하늘처럼 깨끗한 마음으로 감상문을 써 #morning-writing 채널에 나누었죠. 어느 때보다 온기 가득했던 5일간의 기록을 나눕니다. 5일 차 성능경 작가님의 작품 <그날 그날의 영어 1851, 238>와 Achim 에디터 도연, 그리고 모닝 오너분들의 글을 감상해보세요. 예술이 던져준 생각을, 거기서 자라난 나만의 기록을 말입니다.






<그날 그날의 영어 1851, 238>, 성능경 

신문지에 혼합재료, 26x15cm, 2012(좌), 21x29.7cm, 2005-6(우)

출처 : BGA 백그라운드아트웍스


<할머니처럼>, by Achim 에디터 도연

본업으로 독자들의 수필을 엮어 잡지를 만들고 있다. 하루는 한 할머니의 편지가 사무실에 도착했다. 빛바랜 종이에는 할머니의 이야기가 삐뚤빼뚤한 글씨로 적혀 있었다.

할머니에겐 고민이 있었다. 손자가 어린이집에 들어가면 한글을 배우게 될 텐데, 당신은 글을 모른다는 것이 고민이었다. 할머니는 용기를 내 복지관에서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뒤돌아서면 까먹기 일쑤인 할머니와 달리 손자는 실력이 쑥쑥 늘었다. 할머니는 손자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매일 밤늦게까지 글자를 쓰고 읽었다.

어느 정도 실력이 쌓인 할머니는 손자와 함께 동화책을 읽기 시작했다. 어떤 날엔 누가 더 빨리 읽나 시합도 했다. 행복한 나날이었다. 하지만 손자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그 시간은 서서히 줄었고, 할머니는 그때를 그리워하는 자작시를 덧붙이며 편지를 마무리했다.

A4 한 장 가득 적힌 할머니의 이야기를 여러 번 읽으며 생각했다. 이 한 장을 완성하기 위해 할머니는 얼마나 많은 시간 쓰고 지웠을까. 이토록 서툰 글씨체를 갖기 위해 얼마나 많은 종이를 아름답게 더럽혔을까.

늦은 밤 책상 앞에 앉아 일기장을 펼친다. 쏟아내듯 휘갈긴 글자들이 쉽게, 너무나도 쉽게 쓰여 있다. 낼 수 있는 가장 느린 속도로, 담을 수 있는 가장 완전한 진심으로 한 자 한 자 써 내려간다. 아니나 다를까. 글도 글씨도 할머니처럼 아름답게 써 보고 싶은데, 내겐 너무도 요원한 일이다.

별 수 없지. 내일 아침, 다시 쓰는 수밖에. 그나마 할머니를 따라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다.




Essays of Morning Owners


‘에? 이게 뭐지?’

그림에게 건넨 첫 마디였다. 알아보기 어려운 글씨들과 펜 자국이 뒤엉켜 있는 두 개의 작품. 영수증 같기도 하고, 낙서 같기도 한 이 그림들의 재료를 보니 신문지다. 오래된 포스가 폭폭 풍긴다. 유심히 보다 보니 몇몇 글자들이 하나둘 들어온다. ‘english’, ‘YBM 생활영어’, ‘바둑’ 등. 비로소 확실해진다. 이건 유물이다.

작가님 소개글이 인상깊었다. 오렌지를 ‘아린지’로 발음하는 생경함에 매료돼 뒤늦게 영어를 다시 공부하게 됐다는 그. 작품의 출처는 평일 5일간 동아일보 지면에 실리는 ‘English Review’였고, 이것과 함께 하는 일을 ‘Episode 예술’이라 칭했다. 외국어를 공부하는 배움질이자, 예술인으로서 나만의 작은 사북을 만드는 예술질. 배움을 예술로 승화한 결실이 오늘의 작품이다. 이게 낭만이 아니면 무엇이 낭만인가.

이 작품을 보며 나의 20대를 떠올렸다. 영어 교사가 되기 위해 5년간 매일 밤을 지새우며 공부했던 임용 준비생 시절, 그 고통의 시간도 예술이 될 수 있을까? 여러 번의 완독으로 너덜너덜해진 수험서, 문제풀이들이 빼곡히 적힌 연습장까지. 나의 배움질도, 그렇게 5년을 이어간 내 Episode도 예술이라 말할 수 있다면, 아픔이 조금 사라질 것도 같다. 끝내 합격이란 작품을 손에 쥐지 못 했어도 그때의 내가 낭만이 된다면, 가슴속에 묻어 둔 오랜 상처를 이제는 조금 더 웃으며 꺼내 볼 추억이 될 것 같다. 지난날 많은 종이를 아름답게 더럽혔을 20대의 나에게 새로운 인사를 건네고 싶다. 수고했다, 고생했다 대신 멋지고, 근사했다고. 그때의 네가 인생에서 가장 낭만적인 사람이었다고.

Written by 영글



빼곡한 글자와 예술질이란 말을 번갈아 오래 본다. 예술‘질’. 땜질, 무두질, 줄질, 곁눈질, 손가락질, 서방질, 노름질… ‘도구를 가지고 하는 일’, ‘신체 부위로 하는 어떤 일’이라는 뜻의 접미사인데, 또 어떤 직업이나 직책에 비하하는 뜻을 더하는 접미사도 된단다. 선생질, 순사질, 목수질… 그렇담 예술 뒤에 붙기에 썩 어울리는 꼬리말이다. 사주 보는 집에다 대고 “내가 예술 할 팔자요?” 하니 굶어죽기 딱 좋겠다고 했다. ‘짓이 나서’ 하는 일 아니니 돈 벌긴 글렀다고. 짓이라는 말과 질이라는 말이 형제인가도 잠깐 생각해 본다. 이 별 반대편의 말을 반복해 적는 동안, 그날 동안 성능경 선생님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반복이 무엇을 줄지 바라마지 않으며 열심 적었을까, 아니면 그저 매일을 썼을까. 팔자에 없는 일을 한다고 설치는 것은 나의 이 질이 무엇을 주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냥 매일 쓰고 싶기 때문일까. 그저,  그날 그날의 나의 질을 해낼 따름이다고.

Written by 김산하



봉투에 적힌 나의 이름 엄마의 아빠, 엄마. 할아버지, 할머니. 성인이 된 지 한참이 지났는데 작년 명절까지 할아버지, 할머니가 세뱃돈을 주셨다. 매년 나에게 돌아온 흰 봉투에는 내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이 쓰여 있었다. 검은색 사인펜으로 쓴 두 글자. 이름에 들어간 ’ㅗ’를 ‘ㅓ’로. 그 봉투를 볼 때마다 ‘아, 올해도 역시나!’ 하며 웃음이 절로 나왔다.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부터 할아버지, 할머니께 적은 돈을 봉투에 담아 드린다. 명절에 가지 못하면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전화해서 고맙다고, 잘 받았다고 꼭 안부 인사를 해 주신다. 손자, 손녀 중에 용돈을 주는 손녀는 나밖에 없다는 머쓱한 칭찬까지. 올해 명절부터는 나에게 용돈을 주지 말라고 쐐기를 박았다. 이제야 마음이 한결 놓인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친척들과 내가 준 돈을 쓰지 않고 차곡차곡 통장에 모아 당신들의 자식이 돈이 필요할 때 또는 손자, 손녀들이 대학교에 입학할 때 보태 주시겠지. 돌고 도는 돈. 적든 많든 참 소중한 돈이다. 흰 봉투에 적힌, 나의 이름 아닌 이름 같이.

Written by 봄



영어 단어 적기

내가 영어를 가르치는 8살 짜리 남자아이는 알파벳 쓰기도 헷갈려 한다. J를 거꾸로 쓰고, b와 d를 바꿔서 쓴다. 단어 스펠링을 받아쓰기 시키면 “아이, 모르겠어요.” 한다. 영어를 듣고 따라하는 건 잘해도 역시 쓰는 건 어려운가 보다. 내가 영단어 받아 적기를 다 맞추면 스티커를 준다고 하니 “잠깐만요!” 하며 열심히 따라 쓰고 외운다. 따라 쓰느라 종이가 빼곡해지고 손바닥에 연필 흑연이 묻고 꼬부랑 글씨가 굴러 간다. 아이의 입안에서는 외국의 언어가 낭랑하게 흘러나온다. 그 소리가 듣기 좋아서 살짝 웃는다. 남녀노소 영어를 배우는 모습은 귀엽고 기특한 구석이 있다.

Written by 강민정


빼곡하게 적힌 글자를 보며 ‘열정’에 대해 생각한다.

그 무엇도 처음이라 신이 나던 어린 날의 열정

나를 절로 움직이던 수많은 열정

평생에 쏘아올린 열정 열정은 나이와 무관할 터인데 왜 나는 점점 열정의 빈도가 줄어감을 느끼는 걸까.

새로울 것 없는 일상에 잡아먹힌 탓일까.

작가 노트를 읽으며 배움과 예술이 동의어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해 본다.

정성스레 빼곡히 채워진 작품을 바라보니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는것 같다, 하고 싶은 마음들.

Written by 해영



열정과 욕심은 참 닮아 있다. 무언가에 열정을 갖는다는 것은 잘하고 싶은, 좀 더 나아지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열정은 나를 욕심부리게 한다. 욕심이 열정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둘은 단짝 친구다. 하지만 활활 타오르는 열정과 욕심은 불을 누구보다도 환하게 밝히다가, 결국엔 나의 모든 걸 태워 버려 알싸한 연기만 남기고 꺼져 버린다. 이내 나를 두렵게 만든다. 나에게 과연 이만한 열정과 욕심이 또 존재할까? 크나큰 불에 모든 걸 다 태워 버려 더 이상 불을 지필 장작이 존재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열정을 보이는 것이, 욕심을 내는 것이 무서워진다.

열정과 욕심이 불과 장작이라면, 꾸준히 한다는 것은 물과 자갈 같다. 물에 깎이고 깎여, 흐르고 흘러 계곡의 자갈에서 바다의 모래가 되는 것처럼, 물이 고여 있지 않고 흐르게 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열정이다. 열정이란 종이의 앞면과 뒷면은 확연히 다른 것 같다.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을 안다면 나는 세상의 재미난 일들에 애정을 쏟을 수 있을 것 같은데.

Written by ka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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