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rning Owners]Article #20. What it takes to start a fire

2023-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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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티클은 ACC Morning Hurdling의 첫 번째 프로그램인 ‘Monocle Translation Hurdling’의 결과물입니다.
<The Monocle Companion> 속 일부 컨텐츠를 호스트 희석 님과 모닝 오너 다섯 분이 함께 번역했습니다.


Article #20. What it takes to start a fire 불을 피우기 위해 필요한 것들

실용적인 기술을 익히게 되면 보상이 따라옵니다. 이를테면, 그릇을 빚기 위해 물레에 흙을 얹는 일이나 불을 피우는 일 같은 경우가 그렇죠. 하지만, 이를 통해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울 수도 있답니다.


4년 전 겨울, 저는 숲에서 몇 걸음 떨어진 스페인 중앙에 위치한 시스테마 산맥 경사면에 세워진 아파트를 보았습니다. 저는 창밖으로 눈송이가 소나무 가지를 부드럽게 감싸 안고 있는 계곡 아래의 풍경을 내다보고 있었답니다. 바로 그때였죠. 그곳의 주된 열원으로 화목 난로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더 이상 주저하지 않았답니다. 제 마음은 이미 정해져 있었죠. 저를 사로잡은 이곳은 비단 경치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저의 이상주의적 태도는 마드리드의 번화가 중심지에서 혼자 생활했을 때 별 이유 없이 집어 들었던 ‘그 책’에 뿌리를 두고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책 <월든>은 19세기의 철학자, 시인이자 자연학자였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쓴 회고록으로, 매사추세츠 주에서 자연과 함께 살았던 2년간의 "실험"을 되돌아봅니다. 소로는 고립된 야생의 집으로 이사하기로 한 그의 결정에 대해 매우 확고했습니다. 이에 대해 "나는 신중하게 살기 원하며, 삶의 본질적인 사실만을 앞에 둔 채 깨달아야 할 것에 대해서만 배울 수 없는지 알고 싶었고, 내가 죽음에 이를 때 스스로는 존재하지 않았음을 깨닫기 위해 숲에 들어갔습니다."라고 그의 1854년 출간작의 두 번째 장 ("내가 살았던 곳, 그리고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에 적어두었으며, 이 대답은 생존을 위한 매뉴얼과 초월주의적인 사색 그 사이 어딘가에 해당했습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 불을 피우는 것이 삶의 필수 요소 중 하나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첫겨울을 맞이하며, 쓸만한 불을 피워내는 데에는 정말이지 끔찍한 학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죠.

먼저, 무게에 대한 의문이 있었습니다. 불을 피우는 것이 무척 힘든 일이라는 것을 명시하는 것이 중요하죠. 저기 끌고 와야 하는 나무가 있습니다(다행히, 2020년 겨울에는 저와 남편이 함께 3시간 동안 허리가 끊어질 듯 쌓아 올릴 만큼의 몇 톤의 나무를 주문하자는 기막힌 저의 아이디어가 있었죠). 또 잘라야 하는 나무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열과 일 간의 관계를 설명해 주는 열역학 개념도 있죠. 팔걸이의자에서 습득한 별 볼 일 없는 물리학 지식이나 거의 쓸모없는 것들이었지만, 인터넷에서 찾은 이런저런 엔지니어링 이론에 집착하게 되었습니다. 또, 최적의 연소작용을 위한 특정 타입의 목재들이 있습니다. 솔방울과 나무껍질들은 불쏘시개로 쓰기 위해 숲 바닥에서 모으곤 하죠. 그리고 최종적으로 불을 지펴야 할 불씨들이 있어야 합니다. 이를 제어하기 위한 공기 흡입구도 필요합니다. 물론 이게 항상 성공적이지는 않지만요. 겨울에는 강력한 바람이(가끔 풍속 90km/h 보다 더 빠른 스피드로 몰아치기도 하는 그런 바람이죠) 우리의 이 목가적인 계곡 사이를 굉음을 내며 휘몰아쳐 지나가면, 검게 그을린 연기가 거실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을음으로 뒤덮인 제 팔을 집어넣어 연통을 효과적으로 잘 청소하기 딱 좋은 위치로 비틀어 놓은 것도 아마 세 번째나 네 번째 정도였을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저는 나무로 만든 난방이 제게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개발된 도시의 소녀로서, 불을 피울 수 있는 원초적인 삶의 기술을 얻은 것이 무척 자랑스러웠답니다. 하지만 그 낭만은 이제 저를 떠났죠. 이제 저는 주로 연기 흡입 정도가 위험요소인 아늑하고도 웅웅 거리는 새 난로를 보고 있습니다. 그 사실에 안주하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저는 소로의 <월든>을 다시 넘겨보며 ‘자립’에 관한 글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그가 살았던 자연 생태계 속에서 보냈던 "실험적인" 세월 동안 그의 오두막을 손수 손으로 짓는 과업을 맡고 있었죠. 그는 "내가 지은 굴뚝의 뒷면에 그을음이 생긴 것을 보고 무척 기분이 좋았고, 평소보다 더 올바르고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불을 피울 수 있었다"라고 적어 놓았답니다. 우리의 경험과 크게 다른 것은 없었죠.


책의 결론에서, 소로는 독자들에게 "만약 누군가가 자신의 꿈의 방향으로 자신 있게 나아가고 있고, 상상했던 그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는 평범한 시간에 예상치 못한 성공을 만날 것"이라는 조언을 남겼죠.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저는 실패한 것일까요? 아니면 제가 자연 속에서의 여러 경험의 과정을 겪어내는 것보다 성과에 너무 집중했던 것일까요? 그동안 표출했던 불만이 제가 만들기 시작했던 마을 커뮤니티에 어떤 인상을 남겼나 봅니다. 몇 주가 지나, 집주인은 저희 집의 난로를 다음과 같은 기도문이 새겨진, 철로 만들어진 조금 더 효율적인 방식의 노르웨이산 모델로 바꾸어 주었습니다. "늦은 저녁/ 하루가 끝났을 때/ 저는 불씨를 묻고 / 신은 제 불씨를 지켜 / 이를 꺼지지 않게 해 주소서" 제 개인적인 취향보다는 조금 더 엄숙하고 기독교적이지만, 이 문구는 어떻게 하면 불씨가 재 속에서 밤새 꺼지지 않게 지켜내 다음 날 다시 불을 살려낼 수 있을지를 안내해 줬습니다.

그 실용적인 조언 덕분에 저는 추운 아침마다 희미하게 빛나는 불이 빠르게 다시 활활 타오를 수 있도록 할 수 있었습니다. 또 프로페셔널한 굴뚝 청소부가 마침내, 굴뚝 덮개가 바람의 방향과 잘 맞지 않아 불을 피우기 어려웠던 거라는 진단도 내려주었어요. 저의 미흡함 때문이 아니라, 불이 바람을 맞아 역류하는 탓에 계속해서 꺼진 것이라고요. 이 일련의 사건을 통해 제가 가진 불 피우기에 대한 지식이 기초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지금은 땅(나무가 자라는 곳), 공기(불씨와 연기가 피어오르고 어디론가 향하게 하는 역할), 물(통나무를 건조한 상태로 유지할 것), 그리고 불(프로메테우스가 인류를 위해 훔쳤다는, 우리 마음속 희망과 발전 가능성의 상징), 이 모든 요소의 합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저는 존 핍킨의 2009년작이자 소로의 <월든>에 대한 소설적 속편 ‘우드스버너Woodsburner’ 를 읽은 뒤, 소로 역시 불 때문에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핍킨은 거의 알려져 지지 않은 소로의 젊은 시절에 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소설을 썼습니다. 윌든 연못가 가장자리에 살기 이전에, 박물학자 소로는 자신의 고향에 원시 산림지대 약 120 헥타르에 불을 지르게 되었고, 그 이후로부터 그의 별명은 ‘우드 버너, 즉, 나무태움꾼’ 이 되었습니다. 또, 소로는 자신의 저서 <윌든>에 ‘나 역시 벽난로의 불꽃으로 그만 내 침대에 불이 붙어 침대를 태워먹었다.’라고 적기도 했습니다. 4년간의 목재와 화재에 관한 여러 실험이 마무리되고, 다가올 이번 겨울, 가족들과 함께 마을의 바로 반대편에 있는 우리만의 새 집으로 이사를 하기 때문에 무척 신이 납니다. 산비탈을 가로질러 이웃집들에서 피어오르는 굴뚝의 연기를 바라보는 즐거움은 없어졌지만 말이죠. 해가 동쪽으로 넘어갈 때쯤 산등성이를 아주 넘어가기 전 새벽시간에도 그 굴뚝들은 마치 안내원처럼 깨어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12월 휴일에 시댁을 방문할 때, 그곳에서 저는 그들이 꼼꼼하게 관리하는 나무 난로 앞에 앉아 그 따뜻한 빛과 그 앞에 앉아있는 시간을 즐길 예정입니다. 시아버지는 불을 다루는 데 있어 아주 능숙하신 분으로, 제 도움 같은 건 필요 없으실 거예요. 그럼에도 제가 도울 수 있도록 웃는 얼굴로 도움을 요청하실 수도 있지만, 옛 속담처럼 그건 마치 저를 두 번 죽이는 일과도 같을 거예요. 나무를 자를 때 한 번, 나무를 태울 때 한 번 그렇게 두 번을 말입니다. 그리고 운이 좋다면, 저는 근처 책장에서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 한 권을 찾아 마지막 줄을 다시 읽어볼 수도 있겠죠. 소설에서 스크루지가 새롭게 거듭나며, 흥겨운 축제를 벌이기 위해 밥 크래칫에게 “불을 피우거라”라고 부탁하는 바로 그 장면이 나오는 단락을 말이죠.

소설 속의 스크루지처럼 저는 우리가 범한 실수와 실패로부터 최고의 교훈이 비롯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는 소로가 “사물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사람이 변할 뿐이다”라고 이야기한 것처럼 이제 저는 그저 좋은 사람들과 함께 불의 온기를 느끼고, 그들을 생기 있는 삶으로 불러들이는 충분한 지식들과 함께 이 깜빡이는 불꽃을 그저 감상할 것이랍니다.




작가 소개

아티클의 저자 멜란데즈(Fracheska Melendez)는 대도시 뉴욕 맨해튼에서 태어났습니다. 모노클의 자매 잡지 콘펙트(Konfect)에 여러 글들을 기고하는 작가로, 오늘 함께 읽은 이 아티클 또한 그중 하나입니다. 스페인의 시골 마을로 이사하게 되며 전형적인 도시민이었던 그녀는 살면서 평생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기본적인 생존 기술과 지식을 습득하게 되었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즐겨 적고 있다고 합니다.



Trasnlated by 모닝 오너 희석, 영진, 근영, 지수, 승하,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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