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vision]메뉴'판' 아니라 메뉴'북'

Achim Doyeon
2025-08-28


작년 11월, 새로운 프로비전을 준비하며 Achim 팀은 오래도록 머리를 싸맸다. 메뉴를 어떻게 선보일지에 대해서 말이다.

“1층과 2층에 모든 메뉴를 적은 커다란 칠판을 두는 건 어때요?”

“토스 기기로 주문하면서 메뉴를 볼 수 있게 하는 건요?”

“아니면 심플하게 메뉴와 가격만 담은 가벼운 메뉴판으로 갈까요?”

팀원 모두가 며칠을 두고 아이디어를 쏟아냈지만, 어느 쪽도 마음에 쏙 들지 않았다. 우리가 전하고 싶은 건 단순히 메뉴만이 아니었으니까. Achim은 어떤 브랜드인지, 프로비전이라는 공간은 어떤 곳인지, 이곳에서 우리가 어떤 문화를 만들고 싶은지 두루 담고 싶었다. 매거진에서 출발한 팀답게 할 말이 많은 우리는 결국 결심했다. 메뉴‘판’이 아니라 메뉴‘북’을 만들기로.



천재 디자이너 다혜 님의 아이디어로 Achim의 키컬러인 오렌지색 표지와 하늘색 속표지, 내지를 서로 다른 판형으로 엮은,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메뉴북을 완성했다. 메뉴북을 본 손님의 감탄을 들을 때마다 뿌듯했지만, 보완할 점들이 금세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선 스테이플러로 고정한 중철 제본이기에 종이가 쉽게 떨어졌다. 아침 프로비전이 신선한 재료 사용을 지향하는 만큼 음식 안에 들어가는 재료를 모두 기재했는데, 맛이 잘 설명되지 않는지 손님들로부터 “그러니까 이게 어떤 메뉴인 거예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또 내지에 음식 사진을 최소한으로만 넣었더니 사진이 들어간 메뉴에만 주문이 쏠렸고, 운영하면서 추가되거나 빠진 재료가 늘었고, 인쇄 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오탈자가 눈에 들어왔고⋯. 여름을 앞두고 우리는 다시 한번 결심했다. 여름 시즌 메뉴 런칭에 맞춰 메뉴북을 리뉴얼하기로.



이전의 아쉬움을 꼼꼼히 보완해 새로운 메뉴북을 만들었다. 페이지가 쉽게 떨어지지 않는 스프링 제본으로 바꾸었고, 모든 음식에 사진과 설명글을 병치해 음식 맛을 단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오탈자도 바로잡았으며, 시즈널 메뉴는 노란색 간지로 따로 묶어 시선을 끌었다. 또 아침 프로비전의 시그니처 디저트인 블리스볼과 이벤트 안내를 별도의 색지로 구성한 결과 주문량과 참여율이 눈에 띄게 늘었다. 리뉴얼된 메뉴북을 보고 외주 제작을 문의하신 손님까지 계셨으니, 두 달 가까이 공을 들인 보람을 톡톡히 느꼈다.



사실 리뉴얼 작업은 처음보다 훨씬 수월할 줄 알았다. 오산이었다. ‘됐다!’ 싶으면 다른 문제가 보였고, ‘이제 진짜 끝이다!’ 싶으면 놓치고 있던 부분이 드러났다. 제작 기간이 늘어날수록 왕왕 의문이 들기도 했다. ‘메뉴판에 이렇게까지 공을 들이는 곳이 또 있을까? 그냥 다른 식당들처럼 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지만 메뉴북을 한 장 한 장 집중해 읽어 내려가는 손님들을 보면서 다시금 확신했다. 오직 이곳에만 존재하는 10부짜리 책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를. 메뉴만큼 다채로운 우리의 이야기를, 우리의 이야기만큼 고유한 메뉴들을 오롯이 담아내기엔 아무렴 보통의 메뉴판으론 부족하다.


Edited by Doyeon




Achim Provi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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