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티클은 ACC Morning Hurdling의 첫 번째 프로그램인 ‘Monocle Translation Hurdling’의 결과물입니다. <The Monocle Companion> 속 일부 컨텐츠를 호스트 희석 님과 모닝 오너 다섯 분이 함께 번역했습니다.
Article #19: Cultural Appreciation : 문화적 전유에 관하여
문화적 전유가 소통을 없애고 창의적인 교류 활동을 사라지게 한다는 비판에 다양한 의견이 오갑니다. 이 주제에 대해 조금 더 의미 있는 논쟁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984년, 누군가 미국의 싱어송라이터로 잘 알려진 폴 사이먼에게 남아프리카 스타일의 독특한 포크 음악이자 줄루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음바쾅가mbaqanga’ 녹음테이프를 전해주었습니다. ‘음바쾅가’라는 단어를 시적으로 해석해 보면 “음악의 양식”이라 할 수 있지만, 당시 북반구에서는 전혀 들어본 적 없는 스타일의 장르였죠. 그 음악을 듣고 매우 감동한 사이먼은 자신만의 리듬으로 비슷한 느낌의 사운드를 제작하여 새롭고 독특한 음악의 탄생을 축하하고 싶어 했습니다.
몇 번의 전화와 비행 등의 과정을 거친 후, 아프리카 최고의 음악가들이 참여한 녹음 세션의 결과로 ‘그레이스랜드 Graceland’라는 곡이 완성되었죠. 제가 태어나던 1987년 이후 이 앨범은 전 세계적으로 6백만 부 정도가 팔렸습니다.
이 앨범은 두 가지 독특한 특징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 일반적인 문화적 정의를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며, 다음으로 음악을 해석하고자 하는 폴 사이먼의 권리에 대한 불꽃 튀는 논쟁과 열띤 토론을 가능케 했다는 것입니다. 사이먼은 문화적 보이콧을 무시하며 토착민족의 민속 양식을 도용했다는 혐의로 기소되었죠. 제 생각에 사이먼의 유일한 죄가 있다면 음악적 문화에 감동받아 스스로 직접 시도해보고자 했던 것뿐인 뉴요커였습니다. 문제는 바로 범죄라고 정의하기 어려운 문화적 전유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며, 이 미묘한 차이가 있는 대화에 어떠한 여지조차도 남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경쟁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를 벗어던지고 나면, 비로소 우리는 집단적으로 쓸모없는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죠.
우리가 문화(예술과 인간의 지성)와 전유(권한이나 권리 없이 취하거나 다시 만드는 행위)에 대한 정의를 맡게 된다면, 우리는 곤경에 처할 것입니다. 이에 대해 공통된 주장은 결국 모든 문화에는 수호자와 소유자가 있으며, 누군가는 그것을 기념할 수 있도록 허용되지만, 누군가는 그럴 수 없다고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죠. 당연하게도, 야비하고 냉소적이며 경제적 수익만을 위해 문화적 측면을 찾는 사람들은 항상 존재할 것입니다. 이는 분명히 도덕적으로 의심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부당한 이득이나 냉소 같은 것들을 차치하고서라도, 저는 문화적 축하를 위한 다양한 사례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저에겐 14살 때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에서 경이로움에 휩싸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렘브란트의 작품 “야간 순찰 Rembrandt, The Night Watch-De Nachtwacht(1642)"은 저의 뮤즈였죠. 그 당시, 바로크의 거장과 짐바브웨 출신의 10대 소년에게는 공통점이라고 할 만한 게 거의 없다는 사실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보였습니다. 이렇게 세상을 떠난 지 오래된 네덜란드의 화가와 제 자신 사이의 부족한 공통점 때문에, 아마도 이것은 더 중요하고 의미 있는 연결이었을 것입니다. 저는 그날 이후로 예술가가 되기로 결심했죠. 그것이 저에게 문화적으로 어떤 연관이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요소일까요? 꼭 그렇지도 않죠. 비단 위와 같은 경험만이 저에게 의미 있는 문화적 자극이자 의미 있는 순간은 아니었죠. 이를테면 한국의 영화 중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부터 미국의 대표적인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 <그리움의 끝까지 나아가라>나 데이비드 워 이러로 비치의 <지구의 무게> 같은 것들이 의미 있는 문화적 자극이자 순간이 되어주었습니다.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폴 사이먼은 2022년(물론 전보다 더 나이든 모습으로)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그의 곡 ‘Graceland-그레이스랜드’를 공연했습니다. 이 앨범을 둘러싼 민감한 논쟁이나 분노들이 이제는 사그라들었죠. 말과 문장, 이를 둘러싼 분노들 또한 점차 옅어져만 갔습니다. 결국 남아있는 것은 오직 음악, 이 하나 뿐이었죠. 어쩌면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 소개
아티클의 저자 은돌로보 (kunyalala ndlovu) 는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 태어났으며, 현재는 모노클의 크리에이티브 컨설팅 그룹 ‘윙 크리에이티브’에서 사진, 영화 등 다양한 작업을 하는 아티스트이자, 런던의 빈티지 시장에서 오래된 책들을 판매하는 등 다양한 일과 다양한 경력을 가진 흥미로운 인물이라고 합니다.
이 아티클은 ACC Morning Hurdling의 첫 번째 프로그램인 ‘Monocle Translation Hurdling’의 결과물입니다.
<The Monocle Companion> 속 일부 컨텐츠를 호스트 희석 님과 모닝 오너 다섯 분이 함께 번역했습니다.
Article #19: Cultural Appreciation : 문화적 전유에 관하여
문화적 전유가 소통을 없애고 창의적인 교류 활동을 사라지게 한다는 비판에 다양한 의견이 오갑니다. 이 주제에 대해 조금 더 의미 있는 논쟁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984년, 누군가 미국의 싱어송라이터로 잘 알려진 폴 사이먼에게 남아프리카 스타일의 독특한 포크 음악이자 줄루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음바쾅가mbaqanga’ 녹음테이프를 전해주었습니다. ‘음바쾅가’라는 단어를 시적으로 해석해 보면 “음악의 양식”이라 할 수 있지만, 당시 북반구에서는 전혀 들어본 적 없는 스타일의 장르였죠. 그 음악을 듣고 매우 감동한 사이먼은 자신만의 리듬으로 비슷한 느낌의 사운드를 제작하여 새롭고 독특한 음악의 탄생을 축하하고 싶어 했습니다.
몇 번의 전화와 비행 등의 과정을 거친 후, 아프리카 최고의 음악가들이 참여한 녹음 세션의 결과로 ‘그레이스랜드 Graceland’라는 곡이 완성되었죠. 제가 태어나던 1987년 이후 이 앨범은 전 세계적으로 6백만 부 정도가 팔렸습니다.
이 앨범은 두 가지 독특한 특징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 일반적인 문화적 정의를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며, 다음으로 음악을 해석하고자 하는 폴 사이먼의 권리에 대한 불꽃 튀는 논쟁과 열띤 토론을 가능케 했다는 것입니다. 사이먼은 문화적 보이콧을 무시하며 토착민족의 민속 양식을 도용했다는 혐의로 기소되었죠. 제 생각에 사이먼의 유일한 죄가 있다면 음악적 문화에 감동받아 스스로 직접 시도해보고자 했던 것뿐인 뉴요커였습니다. 문제는 바로 범죄라고 정의하기 어려운 문화적 전유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며, 이 미묘한 차이가 있는 대화에 어떠한 여지조차도 남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경쟁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를 벗어던지고 나면, 비로소 우리는 집단적으로 쓸모없는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죠.
우리가 문화(예술과 인간의 지성)와 전유(권한이나 권리 없이 취하거나 다시 만드는 행위)에 대한 정의를 맡게 된다면, 우리는 곤경에 처할 것입니다. 이에 대해 공통된 주장은 결국 모든 문화에는 수호자와 소유자가 있으며, 누군가는 그것을 기념할 수 있도록 허용되지만, 누군가는 그럴 수 없다고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죠. 당연하게도, 야비하고 냉소적이며 경제적 수익만을 위해 문화적 측면을 찾는 사람들은 항상 존재할 것입니다. 이는 분명히 도덕적으로 의심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부당한 이득이나 냉소 같은 것들을 차치하고서라도, 저는 문화적 축하를 위한 다양한 사례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저에겐 14살 때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에서 경이로움에 휩싸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렘브란트의 작품 “야간 순찰 Rembrandt, The Night Watch-De Nachtwacht(1642)"은 저의 뮤즈였죠. 그 당시, 바로크의 거장과 짐바브웨 출신의 10대 소년에게는 공통점이라고 할 만한 게 거의 없다는 사실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보였습니다. 이렇게 세상을 떠난 지 오래된 네덜란드의 화가와 제 자신 사이의 부족한 공통점 때문에, 아마도 이것은 더 중요하고 의미 있는 연결이었을 것입니다. 저는 그날 이후로 예술가가 되기로 결심했죠. 그것이 저에게 문화적으로 어떤 연관이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요소일까요? 꼭 그렇지도 않죠. 비단 위와 같은 경험만이 저에게 의미 있는 문화적 자극이자 의미 있는 순간은 아니었죠. 이를테면 한국의 영화 중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부터 미국의 대표적인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 <그리움의 끝까지 나아가라>나 데이비드 워 이러로 비치의 <지구의 무게> 같은 것들이 의미 있는 문화적 자극이자 순간이 되어주었습니다.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폴 사이먼은 2022년(물론 전보다 더 나이든 모습으로)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그의 곡 ‘Graceland-그레이스랜드’를 공연했습니다. 이 앨범을 둘러싼 민감한 논쟁이나 분노들이 이제는 사그라들었죠. 말과 문장, 이를 둘러싼 분노들 또한 점차 옅어져만 갔습니다. 결국 남아있는 것은 오직 음악, 이 하나 뿐이었죠. 어쩌면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 소개
아티클의 저자 은돌로보 (kunyalala ndlovu) 는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 태어났으며, 현재는 모노클의 크리에이티브 컨설팅 그룹 ‘윙 크리에이티브’에서 사진, 영화 등 다양한 작업을 하는 아티스트이자, 런던의 빈티지 시장에서 오래된 책들을 판매하는 등 다양한 일과 다양한 경력을 가진 흥미로운 인물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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