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도시를 이렇게나 열렬히 사랑해 본 적이 있을까? 이 도시에서 수십 년을 산 것도 아니고 늘 좋은 기억만 있었던 것도 아닌데 참 이상하다.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 이유가 뭘까. 원인은 묘한 ‘균형감‘ 때문인 것 같다.
뉴욕은 센트럴파크를 가운데 두고 위아래 도시의 성격이 다르다는 점에서 참 흥미롭다. 게다가 뉴요커와 여행객의 비율부터 음악, 패션, 미술 그리고 레거시 산업과 신생 스타트업의 공존까지, 모든 예술과 비즈니스가 알맞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 ‘질서 없음’ 속 질서를 파고들면 결국 뉴욕은 마음속에 남게 된다.
벌 써 한 달 전 이야기다. 일 년만에 다시 돌아온 이 도시에서 걷고 뛰고 잠시 앉아 쉬어가길 반복한 시간들을 몇장의 사진에 담았다. 뜨거운 여름이 이제 막 시작되던 7월의 뉴욕을 여름이 다 가기 전에 나누어 본다. 아울러 지난해 출간한 Achim 매거진 Vol.21 New York 편의 비기닝 레터도 함께 실었다. 일 년 사이 달라진, 동시에 변하지 않은 여름의 뉴욕을 느껴보길 바란다.
P.S. 이번 출장에서 배운 것 한 가지. 숙소는 맨해튼이 최고라는 것. 뉴욕의 여러 도시에 머물러 본 결과 맨해튼에 숙소를 잡으면 다리를 건너지 않아도 어디든 쉽게 갈 수 있다. 다른 곳에 숙소를 잡으면 우버를 탈 때마다 크게 오른 뉴욕의 물가에 깜짝 놀랄지도 모르니, 애초에 돈을 조금 더 보태 맨해튼 도심에 머물길 추천한다.













Vol.21 New York
Beginning Letter, Walking in New York
오늘도 2만 보를 넘겼다. 오랜만에 돌아온 뉴욕은 초여름 날씨다. 바람이 불어 습하지 않고 그늘 아래 걸으면 땀도 금방 식는다. 어서 나오라며 손 내미는 햇살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한참을 걸었다. 사실 뿌리칠 마음도 없었다. ‘좋아, 가자 어디로든’ 하는 마음으로 연분홍색 반팔 셔츠의 소매를 짧게 걷어 올렸다. 아침은 사과 한 알 그리고 요거트에 그래놀라. 아침을 먹으면 자연스럽게 커피 생각이 뒤따른다. 미리 생각해둔 곳이 있다. 라테와 레몬 케이크가 맛있는 맥넬리 잭슨 서점 내 작은 카페. 원고를 마무리하고 잡지를 좀 펼쳐볼 생각이었다. (정작 가보니 서점 카페는 없어졌더라, 근처 샌드위치 가게에서 점심을 사서 공원 벤치에서 노트북을 열었다.) 숙소에서 서점까지는 걸어서 34분. ‘내 걸음으로 30분이면 되겠지?’ 지하철을 탈까 고민하다 걷기로 한다. 사실 항상 그렇다. 일단 걷는다. 날씨가 좋아서, 생각이 많아서, 좋아하는 사람과 좀 더 있고 싶어서. 다리가 아프면 골목마다 작게 있는 정원에 앉았다 다시 걷는다. 그래서인지 뉴욕을 생각하면 걷고 걷는 내 모습이 떠오른다.
“뉴요커와 여행자를 구분하는 방법이 있어.”
“뭔데?”
“가만히 보면, 뉴요커는 걸음이 빠르고 여행자는 느려.”
스물세 살. 처음 뉴욕에 왔을 때 이곳에 오랫동안 살던 친구가 해준 말이다. 지금 내 걷는 속도는 그때 길들여졌는지도 모른다. 돌아보면 여유롭게 걷는 여행자의 걸음도 좋았을 텐데 뉴욕살이에 고군분투하는 이방인이고 싶지 않았다. 뉴요커의 애티튜드를 온몸으로 흡수하며 익숙했던 모습을 내려놓고 새로운 경험으로 나를 채웠다. 녹지가 있는 곳이라면 벌러덩 누웠고, 동전을 능숙하게 골라내고 달러를 벅스(Bucks)라고 부르거나 빠르게 팁을 계산하는 법도 익혔다. 커피를 주문할 땐 퍼스널 옵션을 추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24시간 하는 지하철을 타고 도시의 밤을 누볐고 퇴근 후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빈티지 가게에 들러 ‘5달러로 예쁜 티셔츠 찾기’ 같은 나만 아는 쇼핑 게임을 즐겼다.
오랜만에 돌아온 뉴욕. 조금 오래 머물 계획이었고 그리웠던 일상을 다시 맛보고 싶었다. 엊그제는 친구와 센트럴 파크에서 요가를 했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잔디에 누워 휴식을 취했다. 햇살 마사지를 듬뿍 받으며 오래 누워있었다. 가벼워진 몸으로 일어나 공원 밖 거리를 걸으니 슬슬 배가 고팠다. 눈에 보이는 푸드 트럭에서 간단한 음식과 마실 것을 사서 벤치에 앉아 우리 앞을 빠르게 지나는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나는 가장 복잡한 도시에서 가장 차분하고 평범한 하루를 살고 싶어.” 8년 전, 이 도시에 살던 때도 같은 마음이었다. 꿈꾸던 해방감은 책임감을 동반했다. 꿈, 기회, 도전. 그런 마음을 품고 이 도시에 왔을지언정 벅찬 마음을 말로 뱉는 대신 이른 아침부터 영업을 시작하는 카페와 델리처럼 캄캄한 새벽에 눈을 떴다. 기록하고, 운동하고, 씻고, 아침 먹고, 좋아하는 옷을 골라 입고 경쾌하게 계단을 내려가 무거운 아파트 문을 밀고 나갔다. 전철역을 향해 씩씩하게 걸으며, 또 다른 ‘오늘’ 속으로 뛰어들었다. 뉴욕은 내게 그런 도시다. 엄청나게 시끄럽지만, 믿을 수 없을 만큼 가깝다. 눈은 저 멀리를 보지만 이 땅에 두 발을 단단히 붙이고 제 길을 걷는 사람들이 여기에 있다. 다시 돌아온 도시에서 머문 3주. 끝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떠날 때가 되니 익숙해진 일상이 멀어지는 것 같아 아쉽지만, 어느 곳에서든 이렇게 걸으면 되지 않나 싶어 마음은 가볍다. 어디서든 같은 마음으로, 언제라도 걸을 수 있는 마음을 품고 돌아간다.
한 도시를 이렇게나 열렬히 사랑해 본 적이 있을까? 이 도시에서 수십 년을 산 것도 아니고 늘 좋은 기억만 있었던 것도 아닌데 참 이상하다.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 이유가 뭘까. 원인은 묘한 ‘균형감‘ 때문인 것 같다.
뉴욕은 센트럴파크를 가운데 두고 위아래 도시의 성격이 다르다는 점에서 참 흥미롭다. 게다가 뉴요커와 여행객의 비율부터 음악, 패션, 미술 그리고 레거시 산업과 신생 스타트업의 공존까지, 모든 예술과 비즈니스가 알맞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 ‘질서 없음’ 속 질서를 파고들면 결국 뉴욕은 마음속에 남게 된다.
벌 써 한 달 전 이야기다. 일 년만에 다시 돌아온 이 도시에서 걷고 뛰고 잠시 앉아 쉬어가길 반복한 시간들을 몇장의 사진에 담았다. 뜨거운 여름이 이제 막 시작되던 7월의 뉴욕을 여름이 다 가기 전에 나누어 본다. 아울러 지난해 출간한 Achim 매거진 Vol.21 New York 편의 비기닝 레터도 함께 실었다. 일 년 사이 달라진, 동시에 변하지 않은 여름의 뉴욕을 느껴보길 바란다.
P.S. 이번 출장에서 배운 것 한 가지. 숙소는 맨해튼이 최고라는 것. 뉴욕의 여러 도시에 머물러 본 결과 맨해튼에 숙소를 잡으면 다리를 건너지 않아도 어디든 쉽게 갈 수 있다. 다른 곳에 숙소를 잡으면 우버를 탈 때마다 크게 오른 뉴욕의 물가에 깜짝 놀랄지도 모르니, 애초에 돈을 조금 더 보태 맨해튼 도심에 머물길 추천한다.
Vol.21 New York
Beginning Letter, Walking in New York
오늘도 2만 보를 넘겼다. 오랜만에 돌아온 뉴욕은 초여름 날씨다. 바람이 불어 습하지 않고 그늘 아래 걸으면 땀도 금방 식는다. 어서 나오라며 손 내미는 햇살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한참을 걸었다. 사실 뿌리칠 마음도 없었다. ‘좋아, 가자 어디로든’ 하는 마음으로 연분홍색 반팔 셔츠의 소매를 짧게 걷어 올렸다. 아침은 사과 한 알 그리고 요거트에 그래놀라. 아침을 먹으면 자연스럽게 커피 생각이 뒤따른다. 미리 생각해둔 곳이 있다. 라테와 레몬 케이크가 맛있는 맥넬리 잭슨 서점 내 작은 카페. 원고를 마무리하고 잡지를 좀 펼쳐볼 생각이었다. (정작 가보니 서점 카페는 없어졌더라, 근처 샌드위치 가게에서 점심을 사서 공원 벤치에서 노트북을 열었다.) 숙소에서 서점까지는 걸어서 34분. ‘내 걸음으로 30분이면 되겠지?’ 지하철을 탈까 고민하다 걷기로 한다. 사실 항상 그렇다. 일단 걷는다. 날씨가 좋아서, 생각이 많아서, 좋아하는 사람과 좀 더 있고 싶어서. 다리가 아프면 골목마다 작게 있는 정원에 앉았다 다시 걷는다. 그래서인지 뉴욕을 생각하면 걷고 걷는 내 모습이 떠오른다.
“뉴요커와 여행자를 구분하는 방법이 있어.”
“뭔데?”
“가만히 보면, 뉴요커는 걸음이 빠르고 여행자는 느려.”
스물세 살. 처음 뉴욕에 왔을 때 이곳에 오랫동안 살던 친구가 해준 말이다. 지금 내 걷는 속도는 그때 길들여졌는지도 모른다. 돌아보면 여유롭게 걷는 여행자의 걸음도 좋았을 텐데 뉴욕살이에 고군분투하는 이방인이고 싶지 않았다. 뉴요커의 애티튜드를 온몸으로 흡수하며 익숙했던 모습을 내려놓고 새로운 경험으로 나를 채웠다. 녹지가 있는 곳이라면 벌러덩 누웠고, 동전을 능숙하게 골라내고 달러를 벅스(Bucks)라고 부르거나 빠르게 팁을 계산하는 법도 익혔다. 커피를 주문할 땐 퍼스널 옵션을 추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24시간 하는 지하철을 타고 도시의 밤을 누볐고 퇴근 후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빈티지 가게에 들러 ‘5달러로 예쁜 티셔츠 찾기’ 같은 나만 아는 쇼핑 게임을 즐겼다.
오랜만에 돌아온 뉴욕. 조금 오래 머물 계획이었고 그리웠던 일상을 다시 맛보고 싶었다. 엊그제는 친구와 센트럴 파크에서 요가를 했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잔디에 누워 휴식을 취했다. 햇살 마사지를 듬뿍 받으며 오래 누워있었다. 가벼워진 몸으로 일어나 공원 밖 거리를 걸으니 슬슬 배가 고팠다. 눈에 보이는 푸드 트럭에서 간단한 음식과 마실 것을 사서 벤치에 앉아 우리 앞을 빠르게 지나는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나는 가장 복잡한 도시에서 가장 차분하고 평범한 하루를 살고 싶어.” 8년 전, 이 도시에 살던 때도 같은 마음이었다. 꿈꾸던 해방감은 책임감을 동반했다. 꿈, 기회, 도전. 그런 마음을 품고 이 도시에 왔을지언정 벅찬 마음을 말로 뱉는 대신 이른 아침부터 영업을 시작하는 카페와 델리처럼 캄캄한 새벽에 눈을 떴다. 기록하고, 운동하고, 씻고, 아침 먹고, 좋아하는 옷을 골라 입고 경쾌하게 계단을 내려가 무거운 아파트 문을 밀고 나갔다. 전철역을 향해 씩씩하게 걸으며, 또 다른 ‘오늘’ 속으로 뛰어들었다. 뉴욕은 내게 그런 도시다. 엄청나게 시끄럽지만, 믿을 수 없을 만큼 가깝다. 눈은 저 멀리를 보지만 이 땅에 두 발을 단단히 붙이고 제 길을 걷는 사람들이 여기에 있다. 다시 돌아온 도시에서 머문 3주. 끝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떠날 때가 되니 익숙해진 일상이 멀어지는 것 같아 아쉽지만, 어느 곳에서든 이렇게 걸으면 되지 않나 싶어 마음은 가볍다. 어디서든 같은 마음으로, 언제라도 걸을 수 있는 마음을 품고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