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vision]프로비전 저널 Ep.08 : 만남과 이별 사이

2024-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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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이의 거리가 만남과 이별, 그 사이 어디쯤에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니면 우린 만남과 이별을 되풀이하는 애매한 관계가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의 첫 만남은 때 이른 더위에 긴소매 자락을 접기 시작했을 무렵, 우연한 인연으로 이루어졌다. 우연한 만남과 첫 만남이 늘상 그렇듯 어색한 분위기가 공간에 모락모락 피어났다. 그 때문에 나와 그녀는 두 손을 어쩔 줄 몰라 하며 커피 잔만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문득 그녀에게 궁금한 점이 생겨 몇 가지 질문을 했다. 그녀는 나직한 목소리로 답했다.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 사이에 비슷한 점이 꽤나 많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매주 토요일 아침, 잠든 프로비전의 회백색 시멘트 벽은 청량한 그녀의 목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전날의 피로 탓에 눈꺼풀이 무거운 우리도 덩달아 눈이 번쩍 뜨였다. 아마도 그녀의 목소리에는 늦잠 자는 아이마저 벌떡 일어나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늘 분홍색 앞치마를 착용하고 일을 했다. 특별히 분홍색을 고집하는 이유를 묻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다. 그 이유를 감히 추측해 보자면, 따듯한 봄을 알리는 벚꽃과 같은 마음을 드러내고자 했던 게 아닐까.


분홍 앞치마를 한 그녀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1층과 2층을 종횡무진했다.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느라 힘들 법도 한데, 그런 내색 없이 음식이 담긴 접시를 손님에게 내어 주며 친절한 설명도 잊지 않았다. 우린 그녀를 ‘사장보다 더한 사장’이라고 장난스럽게 부르곤 했다. 그녀는 그 말에 줄곧 배시시 웃었다.


그사이 봄은 여름에 가까워졌고, 그녀와 우린 만남에서 이별로 향해 갔다. 가녀린 꺼풀을 벗지 못한 채 봄을 지낸 그녀에게 이 여름은 아름다운 계절이자 떠나기 좋은 계절처럼 보였다. 물씬 풍기는 여름 내음과 도시 가로수들의 짙은 녹색은 이별의 전조 증상처럼 보였다. 우리는 다가올 이별을 준비해야 했다.


이별이 어색한 우리는 당분간 그녀의 빈자리가 생각날 것 같다. 그리고 토요일 아침, 꽤나 늦장을 부릴 것만 같다.


Written & Photographed by Minh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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