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수업을 들었다.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글쓰기 수업을 받아본 적이 없는  같았다. 아! 입시  논술 전형에 지원하며   수업을 들어봤던  빼고는. 대학을 다닐 때는 과제를 위해 썼고 졸업을 하고 나서는 생각을 정리하고 전하는 도구로 썼다. <Achim>도 그런 맥락으로 탄생했다. 아침에 일어나 떠오르는 것들을 적어내려  것들을 모아서 만들었지..!

출근길. 삼성역에서 내려 회사 앞까지 가는 버스로 갈아탔다. 자리에 앉아 오랜만에 페이스북을 들어갔다. 이런  저런 일로 가득한 타임라인에 엄지손가락을 멈추게 하는 포스트가 하나 있었다. 평론가 차우진 선생님이 <관점을 바꾸는 글쓰기>라는 수업을 시작한다는 소식. 마침 서울로 이사도 왔겠다. 깊어지는 금요일 밤에 마음 졸이는 일은  이상 없을 터. 고민 없이 신청했다.  달동안 이뤄진  번의 만남. 매주 읽을거리가 있고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마지막으로 준비한 종이에 샤프를 들고 글을 썼다. 사실 글을 쓰는 스킬 보다 '어떤 관점으로  내려갈 것인가?'를 고민했다. 관찰과 개입, 읽고 쓰는 압박으로부터의 자유, 주변을 생각하며 걷고 쓰는 것, 마지막으로 깊이 빠져있는 혹은 사랑하는 존재에 관해 나눴다. 선생님이 준비해주신 읽기 자료들이 너무 좋았다. 특히 마지막 수업  읽었던 수전 손택의 <해석에 반대한다>의  챕터 - '캠프에 대한 단상'에는 오랫동안 곱씹고 싶은 내용이 많았다. 수업  책을 구매해 다시 읽고 있다. 온통 추상적이 언어와 형태로 빚어진 예술의 영역을 수전 손택의 관점으로 해석한다. 자신의 해석을 계속해서 객관화하고 거리를 두려는 그녀의 태도가 멋지다. 쉬운 글은 아니지만 끈질기게 붙들고 있다. 그러던   구절이 눈에 들어온다. "예술 작품은 몰입하는 이에게 총체적이거나 절대적인 권리를 행사한다." 결국 몰입해야 알아먹는 거다. 문장 위를 자꾸만 미끄러지는 시선이 덫에 걸린 느낌이었다. 자세를 고쳐 앉고 다시 읽기 시작했다.

  동안의 글쓰기 수업은 기술보다는 다르게 생각하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사람과 사물의 시선을 넘나들었다. 뜨겁게 마주하거나 차갑게 나열하는 것. 나를 정의하기 위해 나로부터 멀어지는 것. 언제까지나 낯설고 싶다. 오랜만에 연필을  쥐었다. 평생토록 ‘쓰는 감각’에 예민하고 싶다. 연휴가 끝나면 다음 수업이 열릴  같다. 이런  두고 강추 한다고 말하는 건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