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아빠는 정상이다. 바를 정(正)에 서로 상(相)을 쓰는 윤 정상. 지금까지는 아빠 이름에 대해 별다른 생각이 없었는데 이번 호를 준비하며 윤 ‘정상' 씨의 지난날을 돌아보니 웃음이 난다. 한 자씩 보면 평범한데 두 자를 붙이니 산 ‘정상’에 선 아빠 모습도 상상되고 여러모로 비상한 이름이다. 언니와 내 이름을 지을 때도 그랬다. 친가와 외가 통틀어 두 자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없는데, 왜 우리는 다르게 지었는지 여쭤보니 “그냥~ 이쁠 것 같아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맞다 아빠는 단순한 사람이다.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고 아침이 되면 일을 한다. 몇 가지 관심사 외에는 시큰둥하다. 유일하게 당신의 마음을 여는 대상은 부모님과 형제, 아내와 딸들 그리고 두 마리 강아지뿐이다.
아빠의 행복은 심플하다. 가족이 건강하고 본인을 편안하게 해주면 만사 오케이. 가정의 질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엄격, 근엄, 진지한 가장은 아니다. 날마다 소소히 챙김 받는 것, 예를 들면 출퇴근길의 배웅과 마중 인사면 충분하다. 그것이 당신 삶의 원동력이다. 밖에 나가 엄마 자랑 딸 자랑 하는 기쁨으로 산다. 아빠는 귀엽다. 지금까지 쌓아오신 엉뚱한 에피소드만 들어봐도 왜 그런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아빠는 ‘성실’의 아이콘이다. 자동차 회사의 유능한 세일즈맨으로 10년 그리고 지금까지 자영업자로서 가장의 책임을 성실히 다하셨다. 한때는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시더니 ‘성실 부동산’을 여셨고, 열심히 나가시던 배드민턴 동호회에서 아빠 닉네임은 ‘성실’이었다. 엄마와 연애 시절,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해 외할아버지께, “똥지게를 지고서라도 어떻게든 잘 벌어먹고 살겠다”고 했다는데, 두 딸이 다 크고 독립을 할 때까지 아빠는 정말로 그랬다. 성실함은 아빠의 무기다. 뜻대로 되지 않은 일들도 많았지만 어려움이 찾아오면 묵묵히 방법을 찾고 헤쳐가셨다.
아빠는 취미 생활마저 성실하다. 호기심이 생기면 깊이 파고들어 전문가 수준에 오르고야 만다. 젊은 시절의 아빠는 스키와 테니스에 올인했다. 덕분에 언니와 나는 일찍이 스키 타는 법을 배웠는데 기초가 중요하다며 몇 날 며칠 동안 자세만 배웠던 기억이 난다. 나는 다리 힘이 약해 초급을 기웃거리다 말았지만 언니는 거의 꼬마 스키 선수가 됐다. 아빠의 테니스 생활에서는 할 말이 많은데, 일요일 아침마다 본인은 레슨이 있다며 엄마와 우리만 교회에 내려주고 테니스장으로 신나게 발길을 돌리던 아빠는 지금 생각해도 조금 얄밉긴 하다.
30대 후반의 아빠는 사진에 깊이 빠졌다. 아파트 상가 안에 있는 동네 사진관을 놀이터처럼 드나들더니, 암실 현상까지 직접 하기에 이르렀고 어느 날 장비를 하나둘 사 모아 홀연히 유럽으로 출사를 떠났다. 아빠의 부재를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어렸던 나는 언니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지만, 어느 날 갑자기 아빠가 사라졌는데, 엄마는 아빠의 당부대로 아침마다 주인 잃은 차에 시동을 걸었다고 했다. 그렇게 보름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아빠는 애지중지하던 카메라를 야간열차에서 도둑맞아 풀이 죽어 있었지만 다행히 필름은 무사히 돌아왔다. 이번 호에 담긴 사진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아빠는 호기심이 많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움직인다. 그로부터 20년쯤 뒤 이번에는 산티아고로 떠난다. 무려 600km를 걸으셨다.매일 정해둔 거리를 걷고 나면 숙소에 돌아와 오늘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요약해 사진과 함께 메시지를 보내셨다. 사진 속 아빠는 햇볕에 그을려 얼굴이 부쩍 까매졌지만 아이같이 밝게 웃고 있었다. 어떤 날은 투박한 손에 쥔 아이스크림 콘 사진이 날아왔고, 당신보다 훨씬 큰 서양의 젊은 친구들 가운데 서서 어색하게 웃는 사진을 보냈던 날에는, 영어를 잘했다면 여행이 더 즐거웠을 거라고 아쉬워하셨다.
요즘 아빠의 큰 낙은 자전거다. 어느 날 아빠는 가족 카톡 방에 메시지를 하나 보냈다. “여주에는 자전거 전문 숍이 없어 아빠가 공부해서 해보려고. 자전거에 대해 기본 정비는 알아야지 장거리 갈 때 불안하지 않거든. 딸들 덕분에 이것도 할 수 있는 것 같아, 어렵지만 도전! 실패하면 숍에 가면 되니까!” 늘 엄마와 함께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빠는 자전거를 전혀 탈 줄 모르던 엄마에게 우리에게 그러셨듯 천천히 타는 법을 알려주시더니 이제는 엄마용 접이식 자전거도 마련해 이리저리 손 보고 계신다. 요즘은 두 발로 걸었던 순례자길을 자전거를 타고 다녀오겠다는 꿈을 꾸고 계신다.나는 요즘 아빠가 참 좋다. 호기심이 이끄는 삶을 따라 성실히 살아가는 아빠. 우리 가족의 웃음 버튼이 되는, 엉뚱하고 아이 같은 당신의 모습이 오래도록 그대로이길 바란다.





Magazine <Achim> Vol.25 Beginning Letter
Written by Jin Youn
Photo by Jungsang Yoon
우리 아빠는 정상이다. 바를 정(正)에 서로 상(相)을 쓰는 윤 정상. 지금까지는 아빠 이름에 대해 별다른 생각이 없었는데 이번 호를 준비하며 윤 ‘정상' 씨의 지난날을 돌아보니 웃음이 난다. 한 자씩 보면 평범한데 두 자를 붙이니 산 ‘정상’에 선 아빠 모습도 상상되고 여러모로 비상한 이름이다. 언니와 내 이름을 지을 때도 그랬다. 친가와 외가 통틀어 두 자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없는데, 왜 우리는 다르게 지었는지 여쭤보니 “그냥~ 이쁠 것 같아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맞다 아빠는 단순한 사람이다.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고 아침이 되면 일을 한다. 몇 가지 관심사 외에는 시큰둥하다. 유일하게 당신의 마음을 여는 대상은 부모님과 형제, 아내와 딸들 그리고 두 마리 강아지뿐이다.
아빠의 행복은 심플하다. 가족이 건강하고 본인을 편안하게 해주면 만사 오케이. 가정의 질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엄격, 근엄, 진지한 가장은 아니다. 날마다 소소히 챙김 받는 것, 예를 들면 출퇴근길의 배웅과 마중 인사면 충분하다. 그것이 당신 삶의 원동력이다. 밖에 나가 엄마 자랑 딸 자랑 하는 기쁨으로 산다. 아빠는 귀엽다. 지금까지 쌓아오신 엉뚱한 에피소드만 들어봐도 왜 그런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아빠는 ‘성실’의 아이콘이다. 자동차 회사의 유능한 세일즈맨으로 10년 그리고 지금까지 자영업자로서 가장의 책임을 성실히 다하셨다. 한때는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시더니 ‘성실 부동산’을 여셨고, 열심히 나가시던 배드민턴 동호회에서 아빠 닉네임은 ‘성실’이었다. 엄마와 연애 시절,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해 외할아버지께, “똥지게를 지고서라도 어떻게든 잘 벌어먹고 살겠다”고 했다는데, 두 딸이 다 크고 독립을 할 때까지 아빠는 정말로 그랬다. 성실함은 아빠의 무기다. 뜻대로 되지 않은 일들도 많았지만 어려움이 찾아오면 묵묵히 방법을 찾고 헤쳐가셨다.
아빠는 취미 생활마저 성실하다. 호기심이 생기면 깊이 파고들어 전문가 수준에 오르고야 만다. 젊은 시절의 아빠는 스키와 테니스에 올인했다. 덕분에 언니와 나는 일찍이 스키 타는 법을 배웠는데 기초가 중요하다며 몇 날 며칠 동안 자세만 배웠던 기억이 난다. 나는 다리 힘이 약해 초급을 기웃거리다 말았지만 언니는 거의 꼬마 스키 선수가 됐다. 아빠의 테니스 생활에서는 할 말이 많은데, 일요일 아침마다 본인은 레슨이 있다며 엄마와 우리만 교회에 내려주고 테니스장으로 신나게 발길을 돌리던 아빠는 지금 생각해도 조금 얄밉긴 하다.
30대 후반의 아빠는 사진에 깊이 빠졌다. 아파트 상가 안에 있는 동네 사진관을 놀이터처럼 드나들더니, 암실 현상까지 직접 하기에 이르렀고 어느 날 장비를 하나둘 사 모아 홀연히 유럽으로 출사를 떠났다. 아빠의 부재를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어렸던 나는 언니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지만, 어느 날 갑자기 아빠가 사라졌는데, 엄마는 아빠의 당부대로 아침마다 주인 잃은 차에 시동을 걸었다고 했다. 그렇게 보름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아빠는 애지중지하던 카메라를 야간열차에서 도둑맞아 풀이 죽어 있었지만 다행히 필름은 무사히 돌아왔다. 이번 호에 담긴 사진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아빠는 호기심이 많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움직인다. 그로부터 20년쯤 뒤 이번에는 산티아고로 떠난다. 무려 600km를 걸으셨다.매일 정해둔 거리를 걷고 나면 숙소에 돌아와 오늘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요약해 사진과 함께 메시지를 보내셨다. 사진 속 아빠는 햇볕에 그을려 얼굴이 부쩍 까매졌지만 아이같이 밝게 웃고 있었다. 어떤 날은 투박한 손에 쥔 아이스크림 콘 사진이 날아왔고, 당신보다 훨씬 큰 서양의 젊은 친구들 가운데 서서 어색하게 웃는 사진을 보냈던 날에는, 영어를 잘했다면 여행이 더 즐거웠을 거라고 아쉬워하셨다.
요즘 아빠의 큰 낙은 자전거다. 어느 날 아빠는 가족 카톡 방에 메시지를 하나 보냈다. “여주에는 자전거 전문 숍이 없어 아빠가 공부해서 해보려고. 자전거에 대해 기본 정비는 알아야지 장거리 갈 때 불안하지 않거든. 딸들 덕분에 이것도 할 수 있는 것 같아, 어렵지만 도전! 실패하면 숍에 가면 되니까!” 늘 엄마와 함께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빠는 자전거를 전혀 탈 줄 모르던 엄마에게 우리에게 그러셨듯 천천히 타는 법을 알려주시더니 이제는 엄마용 접이식 자전거도 마련해 이리저리 손 보고 계신다. 요즘은 두 발로 걸었던 순례자길을 자전거를 타고 다녀오겠다는 꿈을 꾸고 계신다.나는 요즘 아빠가 참 좋다. 호기심이 이끄는 삶을 따라 성실히 살아가는 아빠. 우리 가족의 웃음 버튼이 되는, 엉뚱하고 아이 같은 당신의 모습이 오래도록 그대로이길 바란다.
Magazine <Achim> Vol.25 Beginning Letter
Written by Jin Youn
Photo by Jungsang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