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것들
오은 (@flaneuroh)
주머니는 감싸준다
실수할 때마다 주머니를 찾았다
아침에 나갈 때면
꼭 동전 몇 닢을 챙겨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카드만 쓰지 않아?
친구가 물었다
들킨 듯 고개를 끄덕이며
주머니 속으로 말을 삼켰다
고개를 끄덕일 때는 소리가 나지 않지만
짤랑짤랑 소리가 얼마나 안심되는 줄 아니
머릿속에 서릿발이 서고
가슴속에 빗발이 칠 때마다
나는 필사적으로 동전들을 만지작거렸다
구리, 니켈, 아연, 알루미늄…
원소가 빛발이 되어 주머니 속에서 반짝였다
나갈 때
주머니는 하고 싶은 말들로 두둑했지만
돌아올 때
주머니는 상처투성이일 때가 많았다
속엣말이 불거지지 않게 손을 깊숙이 찔러 넣었다
매일 아침
상처를 입고 옷을 입었다
상처 입은 옷을 입었다
온기를 내뿜으며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동전들이 속삭이고 있었다
그것들을 감싸 쥔 손에 땀이 가득 맺혔다
짤랑짤랑
아침은 매일 찾아온다
오은 시인
등단 2002년 『현대시』
시집 『호텔 타셀의 돼지들』,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유에서 유』, 『왼손은 마음이 아파』, 『나는 이름이 있었다』
수상 박인환문학상, 구상시문학상, 현대시작품상, 대산문학상
*Vol.19 Warmth 에 실린 시 입니다.
그것들
오은 (@flaneuroh)
주머니는 감싸준다
실수할 때마다 주머니를 찾았다
아침에 나갈 때면
꼭 동전 몇 닢을 챙겨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카드만 쓰지 않아?
친구가 물었다
들킨 듯 고개를 끄덕이며
주머니 속으로 말을 삼켰다
고개를 끄덕일 때는 소리가 나지 않지만
짤랑짤랑 소리가 얼마나 안심되는 줄 아니
머릿속에 서릿발이 서고
가슴속에 빗발이 칠 때마다
나는 필사적으로 동전들을 만지작거렸다
구리, 니켈, 아연, 알루미늄…
원소가 빛발이 되어 주머니 속에서 반짝였다
나갈 때
주머니는 하고 싶은 말들로 두둑했지만
돌아올 때
주머니는 상처투성이일 때가 많았다
속엣말이 불거지지 않게 손을 깊숙이 찔러 넣었다
매일 아침
상처를 입고 옷을 입었다
상처 입은 옷을 입었다
온기를 내뿜으며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동전들이 속삭이고 있었다
그것들을 감싸 쥔 손에 땀이 가득 맺혔다
짤랑짤랑
아침은 매일 찾아온다
오은 시인
등단 2002년 『현대시』
시집 『호텔 타셀의 돼지들』,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유에서 유』, 『왼손은 마음이 아파』, 『나는 이름이 있었다』
수상 박인환문학상, 구상시문학상, 현대시작품상, 대산문학상
*Vol.19 Warmth 에 실린 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