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커뮤니티 ACC(Achim Community Center)에서는 모닝 오너의 아침과 일상을 건강하고 다채롭게 만들어 주는 프로그램이 진행됩니다. Morning Hurdling은 모닝 오너를 중심으로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작은 도전을 함께하는 활동입니다. 우리의 삶에는 하면 좋다는 걸 알지만 선뜻 행동하기 어려운 일이 있어요. 그것들을 Morning Hurdling을 통해 모닝 오너들과 따로 또 같이, 하기 싫은 마음과 핑계를 허들 넘듯 폴짝폴짝 넘어가며 서로 응원하고 용기를 돋궈줍니다.
이 아티클은 첫번째 Morning Hurdling, ‘Monocle Translation’의 결과물로, <The Monocle Companion> 속 일부 컨텐츠를 모더레이터 희석 님과 모닝 오너 다섯 분이 함께 번역했습니다.
Article #53. Do you Know What I mean? : 제 말을 이해 하시겠나요?
번역은 유튜브 영상 하단의 톱니바퀴를 누르고 단순히 세팅을 바꾸는 수준의 일이 아닙니다. 올바르게 번역한다면 아주 간단한 구절만으로도 사람들의 뇌리에 무언가를 남기는 데 힘을 실어줄 수 있죠. 컴퓨터 번역의 기술은 점점 더 향상되고 있지만, 발전되는 기술과 컴퓨터가 놓치고 있는 게 분명 있을 것입니다.
제 직업인 번역을 기계가 대체할 수 있을 거라는 전망이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종종 받곤 합니다. 기계들은 이미 특정분야에서 능숙하게 번역을 해내고 있고, 기술자들은 앞으로 이러한 기술이 더욱 발전하게 될 거라고 확신하죠. 기계가 저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 때가 오면, 저는 은퇴하고 카페를 차리려고 합니다. 어쩌면, 20~30년 안에는 우리 모두가 그런 이유로 카페를 운영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겠군요.
플랫 화이트와 크로와상이 함께하는 미래는 잠시 접어두고, 제가 마주한 이 난감한 상황은 어쩌면 ‘번역’이라는 행위의 핵심을 꿰뚫는 질문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번역’ 은 말하자면 소설을 번역하거나 UN에서 헤드셋을 끼고 빠르게 회의 내용을 번역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는 편입니다.
영화 자막은 글씨가 스크린에 등장하고 사라지는 짧은 순간 사이에 읽혀야 하며 동시에 이해되어야 하죠. 마찬가지로 저도 최대한 많은 의미와 감정을 한정된 스크린 공간 위에 함축하여 내보내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습니다. 관람객들은 배우의 연기를 보고 듣는 동시에 자막도 함께 읽기 때문에, 변역은 보조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해요. 때로는 배우가 화면 위에서 표출하는 감정을 보충해서 풀어내기도 하죠.
자막 번역을 작업하는 것에는 언어적인 능력과 손재주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문화적인 지식과 (제가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 예술적 분석 또한 필요한 편이죠. 고집스럽게 활자를 수정하려는 의지야 뭐 말할 것도 없고 -때로는 매우 반복적으로- 더 이상 수정이 불가능할 정도로 최선을 다할 때까지 수정해야만 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하죠. 이 일은 저를 종종 짜릿하게 만들며 또 자주 기진맥진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시간과 고통스러운 노력이 요구되는 무언가가가 언젠가는 매우 금방, 또 손쉽게 (그것도 공짜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당연하게) 컴퓨터에 의해 행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쓰라려온다는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번역에 대해 이야기하고 생각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어딘가 이상한 이중성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번역에도 창작적인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 또한 예술작업의 일환이라는 사실 자체에 대해서는 아무도 반박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훌륭한 번역을 해내는 데에 들어가는 시간, 노력, 그리고 번역가들의 고유한 창의성을 감사하게 생각하죠. 그러나 동시에 번역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에 계속하여 영향을 미치는 특정한 근거 없는 믿음 같은 것도 있답니다.
제가 가장 강조하고 싶은 사실은 바로 완벽한 번역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입니다. 독자로 하여금 원본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는, 그에 딱 맞는 감정과 나아가 지적 경험을 공유하는 번역에 대해서 말입니다. 현실 세계에서는 이룰 수 없더라도, 쉽게 상상해 볼 수는 있는 일입니다. 만약 이런 이상적인 생각을 가지고 계시다, 결국 번역을 평가함에 있어 번역된 글과 내용을 통해 얼마나 그 이상적인 경험에 근접했느냐로 평가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게 번역가들은 암시와 함축이라는 문법을 통해, 제 생각에는 존재하지 않는, 또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어떤 목표에 가까워지기 위해 끝없이 창의력을 발휘해야 되죠.
제가 함께 일한 영화감독 거의 모두가 이 이상향에 대해 굳게 신뢰하고 있지만, 제가 번역가로서 일을 하면 할수록, 저는 그것이 무의미한 개념이며 또 동시에 우리가 버려야 할 환상이 아닐까 하는 확신이 들곤 합니다. 두 언어 사이의 차이는 정말 단순하게 말하면, 너무 큽니다; 그것들은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깔끔하게 맞아떨어지지 않죠. 단 하나의 아이디어라도 그걸 또 다른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은 새로운 풍경에서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과도 같은 일입니다. 여기에 번역 과정에서 손실된 장면이나 내용만큼 무언가가 다시 더해진다는 사실까지 생각해 본다면… 우리 모두는 옮겨진 하나의 문장이 잘 번역된 것인지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들에 대해 인식하고 있어야 할 필요가 있죠.
만약 번역된 된 것과 이상적이고도 완벽한 번역 사이에 어떤 간극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나약함과 한계 또는 기계 엔진의 비효율적인 마찰 같은 이유 때문이 아닙니다. 그 간극이란 반대로 인간의 창의력이 번성하고 예술에 대한 믿음이 도약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될 수 있습니다. 번역가가 성장할 수 있으며, 또 조용한 공감을 통해 일궈 낼 수 있는 위대한 성취를 이룰 수 있는 기회이죠. 밝은 미래는 해결해야 할 문제를 단순히 소프트웨어 회사에 제안하는 것보다도 오히려 그러한 간극과 틈을 발견하는 일에 더욱 축하를 건네어 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면에서 기계번역이란 결국 인간이 하는 일을 능가할 운명인 것은 확실합니다. 곧 인공지능이 기능적인 면에서도 더욱 완벽한 번역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그들은 한 언어와 다른 언어(그리고 원한다면 또 다른 세 번째 언어)로 이야기되는 요점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전달하게 될 것입니다. 기계 번역은 성가신 형용사에 대해 몇 시간 동안 고민한 뒤에 커피를 마시고 찬물을 얼굴에 끼얹는 등 피로를 풀거나 잠시도 휴식을 취하지 않고 실시간으로 또 효율적으로 일을 마칠 수 있습니다. 컴퓨터는 정말 완벽하게 작동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인생의 즐거움이란 삶의 기이하고도 불완전한 모습에서도 발견할 수 있죠, 그렇지 않나요? 단순한 실용성 위주의 삶은 오히려 차갑고 재미없을 것입니다. 가구, 예술 또는 경험에서의 기능적인 부분 혹은 기계로 제작된 무언가, 기계를 통해 옮겨진 무언가에서 빠지는 것이란 바로 뉘앙스와 맥락을 예술적 감각으로 적용하는 방식일 테죠. 가장 간단한 문구를 작성하는 데 있어서도 감정, 리듬, 음색, 의미를 맞추는 것은 단순히 노하우의 문제가 아닌 뉘앙스의 문제랍니다. 이 뉘앙스에 대한 민감성은 평범한 텍스트나 밋밋해 보일 수도 있는 일상의 대화를 환기시키고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문장으로 변형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죠. 뉘앙스를 조직하고 의미를 만들어나가며 이야기를 이어가는 우리의 능력에서 저는 이러한 것이야 말로 인간의 필수 불가결한 능력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행운을 빈다고 해도, 이러한 능력만큼은 세상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작가 소개
아티클의 저자 파케(Darcy Paquet)씨는 서울에 기반 한 영화 평론가이자 번역가라고 합니다. 그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그리고 홍상수 감독의 <도망간 여자>의 자막 작업을 했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위 세 영화를 포함한 여러 한국영화들에서 그의 자막작업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Translated by 모닝 오너 희석, 영진, 근영, 지수, 승하, 수정
<The Monocle Companion> 보러가기
이 아티클은 첫번째 Morning Hurdling, ‘Monocle Translation’의 결과물로, <The Monocle Companion> 속 일부 컨텐츠를 모더레이터 희석 님과 모닝 오너 다섯 분이 함께 번역했습니다.
Article #53. Do you Know What I mean? : 제 말을 이해 하시겠나요?
번역은 유튜브 영상 하단의 톱니바퀴를 누르고 단순히 세팅을 바꾸는 수준의 일이 아닙니다. 올바르게 번역한다면 아주 간단한 구절만으로도 사람들의 뇌리에 무언가를 남기는 데 힘을 실어줄 수 있죠. 컴퓨터 번역의 기술은 점점 더 향상되고 있지만, 발전되는 기술과 컴퓨터가 놓치고 있는 게 분명 있을 것입니다.
제 직업인 번역을 기계가 대체할 수 있을 거라는 전망이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종종 받곤 합니다. 기계들은 이미 특정분야에서 능숙하게 번역을 해내고 있고, 기술자들은 앞으로 이러한 기술이 더욱 발전하게 될 거라고 확신하죠. 기계가 저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 때가 오면, 저는 은퇴하고 카페를 차리려고 합니다. 어쩌면, 20~30년 안에는 우리 모두가 그런 이유로 카페를 운영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겠군요.
플랫 화이트와 크로와상이 함께하는 미래는 잠시 접어두고, 제가 마주한 이 난감한 상황은 어쩌면 ‘번역’이라는 행위의 핵심을 꿰뚫는 질문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번역’ 은 말하자면 소설을 번역하거나 UN에서 헤드셋을 끼고 빠르게 회의 내용을 번역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는 편입니다.
영화 자막은 글씨가 스크린에 등장하고 사라지는 짧은 순간 사이에 읽혀야 하며 동시에 이해되어야 하죠. 마찬가지로 저도 최대한 많은 의미와 감정을 한정된 스크린 공간 위에 함축하여 내보내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습니다. 관람객들은 배우의 연기를 보고 듣는 동시에 자막도 함께 읽기 때문에, 변역은 보조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해요. 때로는 배우가 화면 위에서 표출하는 감정을 보충해서 풀어내기도 하죠.
자막 번역을 작업하는 것에는 언어적인 능력과 손재주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문화적인 지식과 (제가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 예술적 분석 또한 필요한 편이죠. 고집스럽게 활자를 수정하려는 의지야 뭐 말할 것도 없고 -때로는 매우 반복적으로- 더 이상 수정이 불가능할 정도로 최선을 다할 때까지 수정해야만 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하죠. 이 일은 저를 종종 짜릿하게 만들며 또 자주 기진맥진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시간과 고통스러운 노력이 요구되는 무언가가가 언젠가는 매우 금방, 또 손쉽게 (그것도 공짜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당연하게) 컴퓨터에 의해 행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쓰라려온다는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번역에 대해 이야기하고 생각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어딘가 이상한 이중성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번역에도 창작적인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 또한 예술작업의 일환이라는 사실 자체에 대해서는 아무도 반박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훌륭한 번역을 해내는 데에 들어가는 시간, 노력, 그리고 번역가들의 고유한 창의성을 감사하게 생각하죠. 그러나 동시에 번역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에 계속하여 영향을 미치는 특정한 근거 없는 믿음 같은 것도 있답니다.
제가 가장 강조하고 싶은 사실은 바로 완벽한 번역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입니다. 독자로 하여금 원본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는, 그에 딱 맞는 감정과 나아가 지적 경험을 공유하는 번역에 대해서 말입니다. 현실 세계에서는 이룰 수 없더라도, 쉽게 상상해 볼 수는 있는 일입니다. 만약 이런 이상적인 생각을 가지고 계시다, 결국 번역을 평가함에 있어 번역된 글과 내용을 통해 얼마나 그 이상적인 경험에 근접했느냐로 평가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게 번역가들은 암시와 함축이라는 문법을 통해, 제 생각에는 존재하지 않는, 또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어떤 목표에 가까워지기 위해 끝없이 창의력을 발휘해야 되죠.
제가 함께 일한 영화감독 거의 모두가 이 이상향에 대해 굳게 신뢰하고 있지만, 제가 번역가로서 일을 하면 할수록, 저는 그것이 무의미한 개념이며 또 동시에 우리가 버려야 할 환상이 아닐까 하는 확신이 들곤 합니다. 두 언어 사이의 차이는 정말 단순하게 말하면, 너무 큽니다; 그것들은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깔끔하게 맞아떨어지지 않죠. 단 하나의 아이디어라도 그걸 또 다른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은 새로운 풍경에서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과도 같은 일입니다. 여기에 번역 과정에서 손실된 장면이나 내용만큼 무언가가 다시 더해진다는 사실까지 생각해 본다면… 우리 모두는 옮겨진 하나의 문장이 잘 번역된 것인지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들에 대해 인식하고 있어야 할 필요가 있죠.
만약 번역된 된 것과 이상적이고도 완벽한 번역 사이에 어떤 간극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나약함과 한계 또는 기계 엔진의 비효율적인 마찰 같은 이유 때문이 아닙니다. 그 간극이란 반대로 인간의 창의력이 번성하고 예술에 대한 믿음이 도약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될 수 있습니다. 번역가가 성장할 수 있으며, 또 조용한 공감을 통해 일궈 낼 수 있는 위대한 성취를 이룰 수 있는 기회이죠. 밝은 미래는 해결해야 할 문제를 단순히 소프트웨어 회사에 제안하는 것보다도 오히려 그러한 간극과 틈을 발견하는 일에 더욱 축하를 건네어 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면에서 기계번역이란 결국 인간이 하는 일을 능가할 운명인 것은 확실합니다. 곧 인공지능이 기능적인 면에서도 더욱 완벽한 번역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그들은 한 언어와 다른 언어(그리고 원한다면 또 다른 세 번째 언어)로 이야기되는 요점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전달하게 될 것입니다. 기계 번역은 성가신 형용사에 대해 몇 시간 동안 고민한 뒤에 커피를 마시고 찬물을 얼굴에 끼얹는 등 피로를 풀거나 잠시도 휴식을 취하지 않고 실시간으로 또 효율적으로 일을 마칠 수 있습니다. 컴퓨터는 정말 완벽하게 작동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인생의 즐거움이란 삶의 기이하고도 불완전한 모습에서도 발견할 수 있죠, 그렇지 않나요? 단순한 실용성 위주의 삶은 오히려 차갑고 재미없을 것입니다. 가구, 예술 또는 경험에서의 기능적인 부분 혹은 기계로 제작된 무언가, 기계를 통해 옮겨진 무언가에서 빠지는 것이란 바로 뉘앙스와 맥락을 예술적 감각으로 적용하는 방식일 테죠. 가장 간단한 문구를 작성하는 데 있어서도 감정, 리듬, 음색, 의미를 맞추는 것은 단순히 노하우의 문제가 아닌 뉘앙스의 문제랍니다. 이 뉘앙스에 대한 민감성은 평범한 텍스트나 밋밋해 보일 수도 있는 일상의 대화를 환기시키고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문장으로 변형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죠. 뉘앙스를 조직하고 의미를 만들어나가며 이야기를 이어가는 우리의 능력에서 저는 이러한 것이야 말로 인간의 필수 불가결한 능력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행운을 빈다고 해도, 이러한 능력만큼은 세상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작가 소개
아티클의 저자 파케(Darcy Paquet)씨는 서울에 기반 한 영화 평론가이자 번역가라고 합니다. 그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그리고 홍상수 감독의 <도망간 여자>의 자막 작업을 했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위 세 영화를 포함한 여러 한국영화들에서 그의 자막작업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Translated by 모닝 오너 희석, 영진, 근영, 지수, 승하, 수정
<The Monocle Companion> 보러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