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unity]What are you writing? 글쓰기 밑업을 추억하며

Achim Doyeon
2023-11-21



가을이 절정에 다다른 토요일 아침, 홍대입구역 부근에 위치한 Achim 스팟 ‘누하우스’에서 Achim Vol.26 Writers  발행을 기념하는 밑업을 진행했다. 밑업의 주제는 ‘What are you writing?’. 26호의 여운과 함께 '요즘 쓰는 글'에 대한 이야기를 묻고 답하며 쓰기의 즐거움을 나누었다.

선사마 번역과 모노클 허들링을 진행해 온 Achim의 정다운 친구 희석 님과 초창기 Achim의 밑업에 참여한 적 있는 주현 님, 밑업은 처음이라며 수줍게 인사를 건넨 연정 님과 나윤 님, 그리고 Achim의 디렉터 진 님과 파트너 에디터인 나까지. ‘쓰는 사람’ 여섯이 모여 기다란 테이블에 둘러앉아 인사를 나눴다. 





누하우스 사장님의 세심한 공간 설명을 듣고 맛있는 커피와 디저트를 음미하며 간단한 자기소개를 마친 우리는 한 사람씩 ‘요즘 쓰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가장 먼저 진 님은 "다중 자아"로서 쓰는 삶에 대해 들려줬다. 진 님이 평소 쓰는 글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아침에 눈을 떠 백지 상태로 써 내려가는 글, 일요일 아침 7시마다 발송되는 아침의 뉴스레터 ‘일요영감모음집’에 싣는 글, 그리고 브랜드 컨설턴트로서 쓰는 글까지. 종류에 따라 어투가 달라지는 게 신기하다며 그 예로 비주얼 브랜드 컨설턴시 ‘파운데이션 토아(@foundation.toa)’의 리브랜딩 결과물을 보여 줬다. 포근한 햇살 같은 일영모 속 진 님은 “선명한 확신과 믿음을 바탕으로 성장할 수 있길 바랍니다.”라는 문장으로 끝맺는 브랜드 소개글에선 단단한 바위 같았다. 소개글과 함께 리브랜딩 과정을 PT로 보여 주기도 했는데, 파운데이션 토아의 새 슬로건 ‘Craft Foundation, Create Excellence’를 완성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대화와 고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때로는 단 한 문장을 쓰는 일이 책 한 권을 짓는 과정만큼 치열하다는 것 또한.

희석 님도 진 님처럼 세 가지 자아로 글을 쓴다. 프리랜스 전시 기획자로, 디자인 전공 대학원생으로,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자아”인 시인으로. 특히 일상에서 우연하게 마주한 “좋은 느낌”을 시로 풀어낸다는 희석 님은 우리에게 자작시 ‘예찬’을 들려줬다. 학교 도서관에서 사랑에 빠진 연인을 지켜보며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사랑함을 느낄 수 있었다.”는 희석 님은 그 순간의 느낌을 시에 담았다. 희석 님의 안온한 목소리로 시를 들으며, 좋아하는 시를 쓰는 기쁨 역시 사랑처럼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구나 생각했다. 또 희석 님은 아날로그적인 사람이라 손으로 쓸 때 생각 정리가 잘 되고 기억에 더 많이 남는다며 논문 내용을 정리한 프린트물과 함께 좋아하는 시로 빼곡히 채운 필사 노트를 보여 줬다. 모두가 감탄하자 희석 님은 말했다. “매년 신춘문예에 도전하고 있어요. 시가 너무 좋아서요.” 그 단단함에 나는 희석 님이 아주 오래도록 좋아하는 시를, 좋은 시를 써낼 것이라고 감히 확신했다.



다섯 달 전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왔다는 나윤 님은 차분한 목소리로 이전에 살던 집에 관한 글을 들려줬다. “좋은 공간은 밖에 있어도 다시 돌아가고 싶다.” 그 구절에서 긴 시간 함께해온 집을 향한 애정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었다. 집만큼 본연의 모습을 내보일 수 있는 공간은 없는 듯하다는 생각에 모두 공감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주현 님은 요가를 하다 크게 다친 후 두 다리를 하늘로 쭉 뻗어 올리는 요가 동작 ‘시르시아사나’를 할 때마다 두려웠다고 한다. 넘어질까 봐, 또 다칠까 봐. 그러나 두려움을 느끼는 것에서 나아가 스스로 괜찮다 다독이며 계속 시도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비단 요가뿐 아니라 삶에서도 그래야 한다는 걸 주현 님은 쓰면서 깨달았다. 주현 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쩌면 우리가 글을 쓰는 건, 쓰는 동안 우리도 모르게 삶의 실마리를 찾게 되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연정 님은 작고 두툼한 무인양품 노트에 담은 기록들을 공유했다. 연정 님은 퇴사 후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많은 혼란을 겪었는데, 그때마다 글을 쓰면 마음속 응어리들이 사라졌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난 직후에 쓰기를 좋아하는데, 기상 후 45분간은 마음에 방어 기제가 작동하지 않아 스스로를 오롯이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또 타인의 글도 자신의 글처럼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연정 님은 노트에 끼워 둔 이웃의 쪽지와 흰 종이에 적어 둔 작가 사무엘 울만의 시 ‘청춘’을 담담한 목소리로 나누어 주었다. “우리는 언제나 청춘이다. 그러니 안테나가 꺾일 때, 정신이 냉소로 가득찬 눈과 비탄이란 얼음으로 뒤덮일 때, 우리는 늙은이가 되네, 스무 살조차도. 안테나를 올리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그대 여든 살이어도, 늘푸른 청춘이네.” 

정신이 냉소와 비탄으로 가득 차지 않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쓰고 또 쓰며 각자의 안테나를 갈고 닦는 것 아닐까. 혼자만의 조용한 공간에서 안테나를 보듬는 이들의 모습을 상상하니 이 자리가 더없이 귀하고 애틋하게 느껴졌다.



아무것도 쓰지 않고 돌아가기엔 영 아쉬운 자리. 우리는 15분간 각자 고른 Achim 엽서에 글을 썼다. 주제는 ‘나의 2023년을 돌아보며’. 조금은 이른 감이 있지만, 봄을 지나 여름 거쳐 이 가을, 이 시간이 오기까지 우리 안에 쌓인 게 많으리란 걸 모르지 않았다.

누하우스를 채운 고요한 음악과 함께 15분이 흐르고, 우리는 각자 쓴 글을 돌아가며 낭독했다. 연정 님은 방황도 했지만 지금까지 잘 헤쳐 온 건 응원해 주고 마음을 베풀어 준 사람들 덕이라며, 새해에는 더 단단하고 유연한 사람이 되어 본인도 더 많이 베풀고 싶다고 했다. 나윤 님 역시 2023년을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시작했으나 그 걱정이 무색할 만큼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며 주변 사람들에게 그 공을 돌렸다. 

주현 님은 올해 “대충하지 않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한다. 마음을 크게 쓰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을 멋이라 여긴 지난날을 뒤로하고, 이제는 임하는 일들에 온 마음을 다하고 싶다고. 또 매달 변해가는 달력 위 날짜를 보면서 ‘왜 나만 그대로일까?’ 생각했지만 그 속에서 분명히 변하고 있음을, 그걸 알기 위해선 스스로 믿어야 함을 알게 됐다고 전했다.



한 해 동안 “연결되려, 나아가려, 이겨내려, 떠나보내려” 부단히 노력했다는 진 님. 그런 진님에게 2023년은 Achim이 결코 자신만의 것이 아님을 발견한 한 해였다고 한다. 그 어떤 것도 애초에 계획된 게 없었지만, Achim이 가진 가능성과 잠재력을 날마다 새로이 발견하며 “시작하길 참 잘했다.” 생각했다고. 또 Achim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아침을 토대로 만들어진 브랜드인 만큼, 새해에는 아침에 진 빚을 갚아 나가는 마음으로 Achim을 꾸려 나가리라 다짐했다.

희석 님은 한동안 멀리 있는 장면을 떠올리며 조급해했는데, 그럴 때마다 주변의 인연들이 단단히 잡아 주어 올해를 잘 넘겨 올 수 있었다고 했다. 소중한 사람들에 대한 마음을 나눈 희석 님은 내년을 향한 바람으로 낭독을 마무리했다. “과정을 솔직하게 마주하고 겸손한 태도로 맞이하면 행복이라는 순간이 조금 더 곁에 오래할 수 있을 수 있지 않을까. 나를 책임지고 주변을 이해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쓰는 삶에 대해 나누고 한 해를 돌아보니 어느새 준비한 두 시간이 지나버렸다. 그사이 글로 온기를 나눈 덕일까? 카페 밖으로 나오자 쌀쌀했던 아침 공기가 마냥 포근하게만 느껴졌다. 좋은 주말 보내길 바란다는 해사한 얼굴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돌아가는 길, 마음이 든든했다. 앞으로 쓰는 일이 지치거나 지겨울 때 떠올릴 시간이, 그리고 사람들이 생겼으니까. 이날 아침이 기억 속에서 반짝이는 한, 나는 조금 더 즐겁고 묵묵하게 쓸 수 있을 것 같다.


Photographed by Jin

Edited by Doy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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